개혁의 원동력_성주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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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원동력 

성주진 교수/ 합신구약신학

개혁이란 말은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렵고 떨리는 
말입니다. 특히 교단의 특성이 개혁으로 규정되는 상황에서 이 말은 더욱 부
담이 되는 말입니다. 정치권의 현실이 개혁의 부담을 잘 보여줍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개혁을 내세워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정의 추진
력을 얻으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개혁은 실종되고 이전정권의 전철을 밟
음으로써 차기정권의 개혁대상으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입
니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가 한둘이 아니겠습니다만, 첫째로는 자기개혁의 어려움
을 꼽고자 합니다. 일찍이 톨스토이는 “모든 사람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습니
다. ‘자기개혁’은 수긍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말입니다. 분명한 사
실은 철저한 자기개혁이 없이 타인을 향하여 개혁을 외치는 것은, ‘울리는 꽹
과리’와 같이 허
공을 칠 뿐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개혁은 지속적인 추진을 요청합니다. 베자가 말한 바 같이 ‘개혁교회
는 항상 개혁하는 교회입니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개혁
교회의 특성은 지속적인 개혁을 통하여 주님의 교회를 늘 새롭게 세우는 데 
있습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혁하지 않는 교회는 조만간 경직되고 부패하
는 것이 교회사의 교훈입니다. 개혁교회 역시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싶으면 
개혁피로증을 호소하고 개혁기득권을 주장하면서 제자리에 안주하려는 유혹
에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개혁을 이루
어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강력한 원
동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신적 추진력을 상실한 개혁은 한계상황에 부딪쳐 
주저앉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법이나 규정, 그리고 제도 같은 외형적
인 개선에만 치중하기 쉽습니다. 외형적인 변화도 중요하고 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한 것이지만 이것이 개혁의 전부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추진력을 상실한 교회는 율법주
의적 무력감에 빠질 우려도 있습니다. 개혁의 
동기와 동력이 없이 개혁의 당위성에만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개혁의 원동력은 부흥이라는 명제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참된 개혁
은 영적 부흥의 열매라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진정한 부흥운동은 개
인과 교회, 그리고 사회 전반에 질적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개인의 경건과 
헌신, 교회의 예배와 활동,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가 한 차원 ‘업그레
이드’되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영국의 부흥운동이나 미국의 대각성 운동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놀
라운 부흥과 그 능력으로 추진되는 힘있는 개혁일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사에 큰 획을 긋는 이러한 부흥은 로이드 존스 목사의 주장과도 
같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특별하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부흥은 더
할 나위 없이 강력한 개혁의 원동력이지만, 우리는 그러한 놀라운 부흥이 일
어나기까지 손을 놓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아직 우리가 기대하는 
큰 부흥이 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개혁은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별
한 부흥 외
에도 개인과 교회가 보다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넓은 의미의 
부흥이 있기 때문입니다. 후자의 부흥 역시 개혁을 추구할 수 있는 추진력을 
제공해 줍니다.

부흥이라는 추진력이 없이 인간의 생각이나 노력, 그리고 교권의 힘만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부작용을 낳기 쉽습니다. 부흥이라는 신적인 추진력을 
결여한 개혁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적인 원리와 지침으로 축소하거나 은
혜의 복음을 종교와 윤리의 수준으로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
한 부흥의 바탕이 없는 공의의 추구는 타인에 대하여 엄격한 율법주의가 되
기 쉽고, 그러한 사랑의 추구는 자신에 대하여 나약한 온정주의가 되기 쉽습
니다. 지금은 우리가 과연 무엇을 동력 삼아 개혁을 추구하고 있는지 점검해
야 할 때인 줄 압니다. 영적인 부흥이 개혁의 원동력이 될 때 개인과 교회는 
진정한 개혁의 열매를 지속적으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