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과 ‘틀린 것’
성주진 교수/ 합신 구약신학
다른 것입니까? 아니면 틀린 것입니까? ‘그 사람은 당신과 틀려.’ ‘당신 생
각은 내 생각과 틀려.’ 일상적인 대화에서 우리는 ‘다르다’ 라는 형용사
와 ‘틀리다’ 라는 동사를 혼동해서 사용하기 쉽습니다. 의미의 차이를 모르
는 바 아니면서도 실제로는 동의어처럼 사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단어의 혼동은 단순한 말실수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착각을 넘어 사회의식의 심층에 뿌리박은 것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면 이 혼동은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 라는 인식의 틀에서 유래했을 것입니
다. 이러한 잘못된 동일시가 언제부터 생기게 되었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아마
도 나와 다른 것을 관용하지 못하는 사회풍조가 개념의 혼동을 만들어 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라고 아닐런지요? 전혀 다른 두 단어 또는 개념의 혼동
은 얽히고 설킨 두 집안
처럼 합리적인 판단과 우호적인 관계형성을 방해할 뿐
만 아니라, 사회문화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경을 이
해하고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일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성경은 물론 다른 것과 틀린 것을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예를 들면 이 구분
은 사도 바울이 교회와 성도의 관계를 몸과 지체의 관계로 비유했을 때 기본
적으로 전제한 것입니다. 몸의 비유에서 지체들은 서로 다르지만 어떤 지체
도 결코 틀린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서로 다른 지체들이 온전한 한 몸을 구
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대적으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음을 그림같이 보
여주고 있습니다.
신약의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
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상당히 다르고, 공관복음끼리도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틀리지 않는, 하나님의 귀한 말씀입니다. 구약의 대표적
인 두 역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부터 열왕기까지의 역사와 역대
기의 역사는 서로 다른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같은 역사를 기술합니다. 그러
나 어떤 역사도 틀린 역사가 아닙니다.
이러
한 다름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다름은 원근감과 입체감을 줄뿐
만 아니라 다양한 의미와 적용을 통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사실의
총체성을 아름답게 펼쳐 보여줍니다. 다윗은 한 인격이지만, 역사적 인물이
자 메시야적 인물이요, 은혜의 통로일 뿐만 아니라 신앙의 모델이면서 판단
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음악이 이러한 원리를 잘 보여 줍니다. 음악에는 여러 장르가 있습니다. 어
떤 장르에 속한 작품도 한 코오드만으로 표현될 수 없습니다. 가지각색의 코
오드가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다채로운 장르는 음악을 풍요하게 만듭니
다. 단순한 코오드만으로 구성된 작품은 얼마나 단조로울 것이며, 최소한의
장르만 있는 음악은 또 얼마나 빈약할 것입니까?
마찬가지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배척하고 끼리끼리 모여 사는 사회는 얼
마나 빈약할까요? 그러한 교회는 또 얼마나 초라하겠습니까? 획일적이고 무미
건조하며 조화와 이해와 관용과 사랑과 존중과 화합을 상실한 채 교조주의와
독단과 배척을 일삼는 교회는 결코 천사가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습니다. 교회는 다른 것을 배척의 대
상으로 삼는 대신 협력의 파트너
로 인식하는 관용을 연습하는 복된 연병장입니다.
물론 틀린 것은 틀린 것입니다. 틀린 것을 다만 다를 뿐이라는 주장의 무비
판적 수용은 상대주의에 함몰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상대주의의 논리
가 사랑과 관용의 이름으로 기독교의 절대적인 진리를 허무는 것을 방치해서
는 안됩니다. 틀린 것은 틀린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구원의
절대적 진리가 있습니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말하고, 틀린 것을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개념의
혼동이자, 분류의 착오입니다. 우리는 먼저 진리의 영역에서 이러한 범주의
혼동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혼합주의적 사회에서 우리는 먼저
말씀으로 연단되고 은혜로 넉넉해진 마음을 가져야 될 줄 압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구원의 절대적 진리를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독선적이지 않고, 분명한
입장을 지키면서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랑과 지혜를 가꿔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