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비’의 내면풍경_성주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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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비’의 내면풍경

성주진 교수/ 합신 구약신학

속사정은 겉보기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보잘것없는 것들 중에 
사실은 값을 매길 수 없이 소중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성도
의 실상에 대하여 같은 생각을 표현합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속사람에 대한 바른 인식은 겉모습 때문에 서글퍼진 우리의 
심령에 승리의 위로와 승화된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헌신이라고 부르는 일들 중에는 효율성의 눈으로 바라
볼 때에 어리석은 낭비같이 보이는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다윗
을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물물을 길어온 세 용사의 이야기나, 주
님을 위하여 최고급의 향유 한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경우가 ‘허비’의 대표적
인 예일 것입니다. 이러한 허비의 내면풍경은 과연 무엇일까요? 

위에서 예를 든 허비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그것이 사랑의 표지인 데 있습니
다. 사랑이 대가를 아까워하지 않는 한 허비는 
사랑의 불가피한 표현입니
다. 사랑의 열병, 설렘과 상처 등은 사랑하기 때문에 지불하는 값비싼 허비
인 줄 압니다. 누구도 사랑을 위한 수고를 수고로 여기지 않기에 사랑의 수고
는 허비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온 우주와 역사를 통털어 가장 큰 허비
는 주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허비, 그 사랑이 우리에
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성도의 교제와 하나님 나라의 일에도 많은 허비가 있습니다. 시간과 물질이 
낭비되고 인간관계가 손상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기도의 시간도 낭비
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서두르지 아니 하시기에, 사랑의 
성숙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결
코 낭비가 아닙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은 성도가 허비한 사랑의 수고가 하나님께 드린 향기
로운 제물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허비를 가장 기쁘시게 받으십
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허비를 온 세상을 채워야할 복
음과 사랑의 향기로 받으셨습니다. 다윗도 그의 부하들이 바친 물을 하나님
께 전제로 부어드렸습니
다. 우리의 사랑은, 때때로 어설프고, 자주 서투르
며, 언제나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사랑의 허비를 아름다운 제물
로 받으십니다. 헌신의 신학적 동기는 헌신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향
기로운 제물인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허비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습
니다. 주님 자신을 위해, 다른 영혼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를 
허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사랑과 헌신의 표지로서의 허
비는 하나님께서 가장 존귀히 여기시는 것이기에 영원에 대한 가장 효과적
인 ‘투자’입니다. 이는 세상적인 가치관을 뒤집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이렇게 사랑은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가치가 있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
라, 사랑함으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기독교적 사랑입니다. 허비같은 사
랑이 무한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을 허비한 사람
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작은 사랑이 실천된 자리
에 하나님의 성소가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헌신의 대상이 되었을 때에 그것을 마땅
히 받아야 할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세 용사가 떠온 물을 생명의 피로 인식하고 마
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의 가치와 성격을 알아 본 것입니다. 비
록 자기에게 준 것이지만, 하나님께만 합당한, 너무나 값비싼 헌신과 사랑이
기에,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
았다면,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탈취하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야 가능한 줄 압니다. 먼저 하나님을 바
라봅니다. 하나님을 바라본 그 눈으로 자신을 바라봅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
이 죄인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내가 죄인 것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님을 바
라본 그 눈을 가지고 형제를 바라봅니다. 전에는 어줍잖게 여겨지던 행동들
이 이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아름다운 선물, 향기로운 제물로 보입니
다. 이것이 겉으로는 허비된 것처럼 보이는 우리네 헌신과 사랑이 보여주어
야 할 내면풍경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