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진 칼럼>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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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진 칼럼>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성주진 교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 말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날개가 있
는 것은 추락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다면 날지 않을 것이고, 날지 
않는다면 추락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추락한 것에는 여전히 날개가 있
습니다. 이 날개가 치유 받고 새 힘을 얻으면 또다시 비상할 수 있습니다. 여
기에 모든 추락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소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서 삼손만큼 추락과 비상의 전환을 잘 보여주는 인물도 드뭅니다. 먼
저 삼손이 경험한 추락의 절정은 그가 힘을 상실한 일입니다. 한 때는 나귀 
턱뼈 하나로 천명을 해치웠건만 이제는 한 사람도 상대할 수 없는 연약한 사
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무적의 용사가 원수의 조롱에
도 한마디 대꾸조차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자
신의 것으로 과신하고 언제라도 원하는 때
에 필요한 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연약함을 보지 못하고 자기기만적인 자만심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이 주신 거룩
한 부르심과 은사를 가지고 파멸에 이르는 장난을 치다가 깊은 나락으로 떨어
진 것입니다. 

삼손이 힘을 잃은 것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떠난 사실
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떠난 사실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없습
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 가운데 속할 것입니다. 하나님
이 떠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표현 자체가 말의 모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떠난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는 사
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듭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
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정녕 죄는 성도와 사역자를 무력하게 만듭니
다. 그리고 영적인 축복과 분별력을 빼앗아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거나 느끼
지 못하게 만듭니다. 

삼손은 오늘날 세상 가운데 처한 성도 개인과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도와 교
회가 세상에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지적에 직면해 있습니다. 여러 원인들을 열거할 수 있겠지
만, 삼손의 이야기는 교회의 영향력 상실이 성도들의 죄 때문이 아닌가 스스
로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삼손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랬더라
면 삼손의 이야기는 세속적이고 문학적인 비극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삼
손의 깎인 머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가장 은
혜로운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시 자라기 시작한 삼손의 머리는 자격을 
상실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목적과 은혜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머리카락은 깎인 직후부터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회복은 추락
의 동반자입니다. 아무 것도 그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는 것을 막을 수 없었
습니다. 사실 이것은 삼손 자신의 상태나 그가 처한 환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눈이 뽑혀서 앞을 보지 못하는 중에도 삼손의 머리카락은 자랍니
다.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하는 중에도 꾸준하게 자랍니다. 원수에게 수치와 
조롱을 당하는 중에도 상관없이 자랍니다. 다곤 신전에
서 모욕을 당하는 가운
데서도 변함없이 자라납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침투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삼손의 회개, 곧 믿음의 회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의 회
복된 믿음은 지혜로, 행동으로, 그리고 기도로 나타났습니다. 삼손이 믿고 기
도하고 행동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다시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삼손이 추락
의 아픔을 딛고 재비상의 회복을 누리게 된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의 
반전이었습니다. 

믿음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은혜는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에 기초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날개의 추락과 비상은 은혜와 믿음에 관한 양면의 
진리를 보여줍니다. 다시 날 수 없을 것 같은 추락한 날개를 어루만지며 탄식
하는 이들에게, 과거에 사용했던 날개는 여전히 가지고 있으나 어느덧 몸이 
무거워져 날려는 의지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삼손의 다시 자란 머리카락은 새
로운 비상의 자리로 초청하는 하나님의 초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