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균 칼럼>
예수를 먹은 흔적
정창균/ 새하늘교회 목사
두만 강이 가까운 중국 땅 어느 구석진 곳에서, 북한에서 강을 건너 온 아
버지와 아들을 은밀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14살 된 아들을 데리고 강을 건너온 마흔 두 살의 아버지였습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여 밤중에 찾아가 같이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누며 두어 시간을
같이 보냈습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물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교제를 합니까?” 그가 대답하였
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 사이에는 서로 이야기도 하고,
만나서 신앙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고, 어
떤 식으로 교제하는 지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막역한 사이가 아니
면 부인에게도 자신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잘 말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게는 충격적인 말을 덧붙였습니다. “위험한 일이어서 서로 물
어보거나, 말을 하거나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
나 어떤 사람들은 서로 말을 하
지 않아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알아보지
요?”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지금 북조선에서는 사람들 마음이 어찌나
악해졌는지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저만한 아이들까지도 한번 쌈이 붙었
다 하면 박이 터질 때까지 싸움을 합니다.” 열 네 살이라지만 열 살 정도 밖
에 되어보이지 않는 자기 아들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말
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전에는 그렇게 싸웠었는데 이제는
싸울 일이 있어도 슬슬 피하면서 싸움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
람을 보면, ‘아 저 사람도 예수를 먹었구나’하고 감을 잡습니다.
그러나 물어보지는 못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를 믿는 것을 가리켜 ”예수
를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은, 북한과 같은 그런 험악한 여건 속에서도 예수를 믿
는 사람이 계속 생기고 있다는 사실과, 그런 환경 가운데서도 “예수를 먹은
사람”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아보고 “예수 먹
은 사람”이라는 감을 잡을 수 있는 예수 믿는 사람의 흔적들을 가
지고 있다
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을 믿으려들지 않아서, “나는 교회의 목사입니다”하고 큰 소리로 말해
도 “그래서 어쨌다는 거요?”하는 식으로 치켜올려 보는 정도가 되어버린 남
한 사회에서의 우리 신자들의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 졌습니다. 몇 년 전 부
산의 기차 간에서 만났던 이름 모를 사람의 모습도 생각났습니다.
그 사람은 어쩌다가 말문이 서로 열려 대화를 주고 받기 시작한 저에게, “한
국에서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으면서,
자기는 아무런 차이를 볼 수 없다고 불평하듯, 질책하 듯 제게 따져 물은 것
입니다. 누군가가 저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저 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하고 감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가 “예수를 먹은” 흔적들이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IMF 한파가 몰아치면서 파탄 난 나라의 온갖 처참한 모습이 온 나라를 벽지
바르듯 뒤덮어가고, 삶이 고달픈 많은 사람들의 감성이 메말라 가고 있을
때, “몇 줄 글이라도 써서 다만 몇 사람의 마음 한구석일 망정 어루
만질 수
있다면” 하는 작은 소망으로 “정창균 칼럼”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벌써 4년 가
까운 세월이 지났습니다.
주변의 잔잔한 이야기들, 그러나 진한 감동을 주는 사연들을 함께 나누며 마
음들을 어루만지고, 오른쪽 뇌들을 자극하여 감동을 주고 싶은 것이 글을 쓰
는 저의 작은 소원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아니고 사소한 일에도 진한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칼럼을 한편씩 써나왔는데, 그것이 벌써 4년 세월이 되었고, 그간에 책 한권
으로 묶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목사들이 많이 모인 어느 곳에서 저를 보시
자, “아, 칼럼 쓰시는 목사님!”하시며 저를 알아보시고 그렇게 반가와 하시
는 오래 전에 은퇴하신 연로하신 목사님도 계셨고, 여러 다른 나라에 나가 있
는 분들이, 그리고 나라 안의 여러 곳에서 여러분들이 저의 칼럼을 즐겨 읽는
다며 저를 알아봐 주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칼럼을 쓰면서 별것도 아닌 나의
이야기들에 깊은 관심과 호의를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 한마
디는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정창균 칼럼을 사랑해주신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