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신학교에 갈 때 제게는 나름대로
의 포부가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공부한 경영조직론이나 인간관계론, 혹
은 재무관리론 등의 경영이론을 신학에 접목하여 교회를 위한 새로운 학문 분
야의 체계를 세우는 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시 제 눈에는 교회들이 온통
비능률과 비합리 투성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학 공부를
시작하고 얼마가지 않아서 저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신학을 공
부하고, 교회를 배우면서 교회는 세상의 다른 조직들, 특히 대학에서 배운 경
영조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영조직
은 경제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경제의 원리가 지배한다는 말은 그 조
직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윤의 극대화나 능률의 극대화에 있다는 말입니다.
거기서는 100원을 투자하여 50원을 얻을 수 있는 길과 100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100원을 얻는 길로 가야 합니다. 50원을 얻는
길을 택하는 것은 심하게 말
하면 자살 행위와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
나 제가 신학을 공부하면서 확인한 참다운 교회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교
회는 100원을 투자해서 100원을 얻는 길을 빤히 보면서도, 때로는 오히려 100
원이 적자나는 곳을 의도적으로 택하여 가야되는 때도 있는 특수한 단체였습
니다. 교회는 경제성의 원리가 아니라, 덕의 원리 그리고 사랑의 원리에 따
라 살아나가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가, 어느 정도의 경제
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는 것이 교회
의 의사결정의 절대적인 기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액을 다 손해보는 길인
데도 교회는 그 길을 가야만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에서
공부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교회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교회
는 능률 최우선의 단체도 아니고, 프로그램 중심의 조직도 아니고, 성장 최우
선의 단체도 아니라는 그때의 깨달음은 줄곧 저의 교회관과 목회철학의 형성
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는 덕과 사랑의 원리보다는 경제성의 원리에 의하여 교회
의 포부가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공부한 경영조직론이나 인간관계론, 혹
은 재무관리론 등의 경영이론을 신학에 접목하여 교회를 위한 새로운 학문 분
야의 체계를 세우는 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시 제 눈에는 교회들이 온통
비능률과 비합리 투성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학 공부를
시작하고 얼마가지 않아서 저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신학을 공
부하고, 교회를 배우면서 교회는 세상의 다른 조직들, 특히 대학에서 배운 경
영조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영조직
은 경제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경제의 원리가 지배한다는 말은 그 조
직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윤의 극대화나 능률의 극대화에 있다는 말입니다.
거기서는 100원을 투자하여 50원을 얻을 수 있는 길과 100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100원을 얻는 길로 가야 합니다. 50원을 얻는
길을 택하는 것은 심하게 말
하면 자살 행위와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
나 제가 신학을 공부하면서 확인한 참다운 교회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교
회는 100원을 투자해서 100원을 얻는 길을 빤히 보면서도, 때로는 오히려 100
원이 적자나는 곳을 의도적으로 택하여 가야되는 때도 있는 특수한 단체였습
니다. 교회는 경제성의 원리가 아니라, 덕의 원리 그리고 사랑의 원리에 따
라 살아나가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가, 어느 정도의 경제
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는 것이 교회
의 의사결정의 절대적인 기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액을 다 손해보는 길인
데도 교회는 그 길을 가야만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에서
공부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교회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교회
는 능률 최우선의 단체도 아니고, 프로그램 중심의 조직도 아니고, 성장 최우
선의 단체도 아니라는 그때의 깨달음은 줄곧 저의 교회관과 목회철학의 형성
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는 덕과 사랑의 원리보다는 경제성의 원리에 의하여 교회
를 세워가려 하고, 믿음의 원리보다는 합리성의 원리에 의하여 교회를 이끌어
가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에 대한 생각
이 바뀌니 진로도 바뀌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
고, 순수한 신학자가 되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제가 졸업
반이 되면서부터 시작한 교회 사역을 통하여 다시 한번 바뀌었습니다. 52kg
의 깡마르고 볼품 없는 나같은 어린 사람의 설교와 기도를 통해서도 사람들
이 변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희한한 경험을 하면서 목회의 희열을 맛보게 되었
고, 그래서 저는 교회 현장의 목회자가 되기로 최종결심을 굳힌 것입니다. 말
씀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목회 현장의 이
맛을 저는 평생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감격스러운 일에 목회 일생을
걸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목회자가 된 이유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모든
목회자들이 목회자가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간혹 회의가 생
기기도 합니다. 교인들이(아니 교회의 몇몇 지도자들이) 주는 갈등을 더 이
상 감당할 수 가 없어서 다음 사역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마침내 교회
를 사임하고 나 앉는 몇몇 선후배 동역자들을 근래에 보면서 회의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 이유로 목회자를 괴롭게하고 마침내 대책없이 교회를 나가게
하는 교회들이, 아니 교인들이 사실은 야속합니다. “좀더 참아줄 수 있을텐
데”하는 아쉬움도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