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56>
교회는 무엇을 의존하는가
이윤호_‘선교와 비평’ 발행인
“계명보다 사람의 열심을 앞장 세워선 안돼”
93문> 십계명은 어떻게 나뉩니까?
답>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처음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가르
치며, 둘째 부분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가르칩니다.
94문> 제1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내 영혼의 구원과 복이 매우 귀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온갖 우상숭배,
마술과 점치는 일과 미신, 성인이나 다른 피조물에게 기도하는 것을 피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분만
을 신뢰해야 하며, 모든 겸손과 인내로 그분에게만 복종하고, 모든 좋은 것
들을 오직 그분에게서만 기대하며,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고 경외하
며 그분만 섬겨야 합니다. 그러하므로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하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피조물을 포기합니다.
95문> 우상숭배란 무엇입
니까?
답> 우상숭배란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 대신, 혹
은 하나님과 나란히, 다른 어떤 것을 신뢰하거나 고안하여 소유하는 것입니
다.
아마 한국교회는 제1계명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
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 제일주의에
혼동하지 말아야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선교사들과 초기 교회지도자들은 이미 습성
화되어버린 우상 숭배적 행위를 철저히 근절시켰습니다. 복음을 깨달은 자들
은 조상 제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미신적 행위들에서 떠나는데 주저하지 않
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상숭배가
죄악임을 명백히 깨달은 이상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고난을 피하려하지 않았
습니다.
이러한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보다 훨씬 나
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극소수를 제외한 유다 왕들은 우상숭배를
버젓이 행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의 돌 판이 들어있는 법궤를 중심에 간직하고 있던 그들이 바로 그 첫
째 계명을 지속적으로 범했다는 사실을 언뜻 납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렇지만 부분적으로나마 그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유다왕 아
하스에 관한 기록은 이에 대한 한 가지 단서를 제공합니다. 아하스왕의 우상
숭배 동기를 생각해 보니, 우리의 모습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유다왕 요담의 아들이자 히스기야의 아버지인 아하스는 예루살렘에서 16년
을 치리하였습니다. 당시는 유다왕국이 이웃나라에 의해 시달림을 받던 때였
습니다. 아람의 군대와 북이스라엘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했기 때문입니
다. 유다왕국은 예루살렘 방어에 전력을 다했지만 자신들의 한계를 느꼈습니
다. 이에 대해서 아하스왕이 취한 행동은 힘이 센 나라에 군사 원조를 요청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최대강국은 앗수르였습니다. 아하스왕은 앗수르왕에게 신하의 예를 갖
추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이에 앗수르는 다메
섹을 공격하여 아람왕을 죽임으로써 유다왕국의 안전을 지켜주었습니다. 고
마운 마음에 다메섹으로 단숨에 달려간 유다왕 아하스는 신앙 상식을 넘어서
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 그가 했던 일은 앗수르의 제사단(壇)의 구조를 예루살렘의 제사장
에게 알려주어, 그것과 똑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에
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아하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단에 제사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아하스로 하여금 이와 같은 배교 행위를 하도록 했을
까요? 어쩌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었을지
모릅니다.
앗수르의 종교의식을 따르는 것만큼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도 드물 것
입니다. 유다왕국의 운명을 힘센 이웃나라에 의존했던 것입니다. 역설적이게
도 그들은 하나님의 도성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첫째 계명을 범했
습니다. 그러므로 아하스왕의 범죄는 이방제단에 제사지냄으로써 비로소 성
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대신 앗수르라는 강대국을 의존하려 했을 때 이
미 우상숭배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정의하는 우상숭배는 이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우
상숭배란 다름 아닌 하나님과 나란히 다른 어떤 것을 신뢰하거나 고안하여
소유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우상숭배에 대해서 단호하
게 대처하려 노력해왔습니다. 온
갖 미신적 행위를 교회에서 척결하는데 뜻을 같이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우
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계명을 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아하스왕이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한 가운데 있는 돌 판의 첫 계명을 범
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적지 않게 하나님과 나란히 다른 것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교
회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보존하는 수단으로 합리
적 이성이나 민주주의적 체제를 하나님과 나란히 신뢰하려고 합니다. 우리
의 삶 속에서 과학이라는 신을 하나님과 나란히 두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
라 교회의 부흥과 선교를 위해서 세상의 경제 논리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세속적 방법이
신앙 대신할 수 없어
이런 점에서 교회를 보호하고 부흥시키려는 우리가 오히려 교회에 주신 하나
님의 계명을 범하는 일은 없는지 반성해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