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11문 돌아보기_이윤호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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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9>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11문 돌아보기

이윤호 집사_’선교와비평’ 발행인

1999년 태국의 한 오지에서 몇 달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TV와 컴퓨터는 물
론 식수를 해결할 수도 시설조차 없는, 한참을 걸어가야 이웃집이 나오는 외
딴 곳이었습니다. 낮에는 이웃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노동을 하지만 밤이 되
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함께 한 형제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오지 생활 기억남아

어느 날 밤 다른 형제가 가지고 있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처음 접했습
니다. 한참 동안 손에서 그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요리문답이 나에게 그
토록 가까이 다가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따금씩 생각해 봅니다. 아마 
그것이 위로의 메시지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1문).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상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내게 위로 거리가 되
어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되었을 
때, 
진정한 위로를 갈급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앞부분을 읽어나가는 가운데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겨
나고 있었습니다. 주제가 위로인데 왜 계속 인간의 비참함에 대해서(3-11
문)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것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일상의 비참함을 
넘어, 아담에서부터 태생적으로 전해오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비참함을 
말입니다.

인간의 비참함을 연이어 설명하고 있는 3문에서 11문까지의 내용을 읽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내용은 점점 좁혀져서 결국 하나의 메
시지가 남았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단코 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에 겹쳐져 있는 또 하나의 가르침을 볼 수 있었
습니다. 의에 관해서 하나님의 경륜에 맡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결단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모습 가운데서 가능성을 발견하면 할수록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
라 생각했습니다. 그 가능성을 기반으로 열심히 노력만 하면 큰 강을 헤엄
쳐 목적하고 있는 땅으로 건너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진
정한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의심
과 두려움만 커질 뿐이었습니다. 
이제 스스로는 결단코 목적하는 곳으로 건너갈 수 없다는 비참한 존재적 사
실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크고 견고한 배에 올라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헤엄쳐서 건너는 데 대한 불안과 의심에서 해방되어 진
정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들은 이를 알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찬송을 할 때나 기도를 할 때 
늘 우리 능력의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외형적으로 부족함을 시인하면서도 
실상은 그 반대인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광야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약속의 땅을 정탐했던 백성
들의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메뚜기로 여길 만큼(민 13:33) 자신의 무능함을 
잘 알았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 중심은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백
성들이 스스로의 무능함과 비참함을 올바로 알았더라면 가나안 진격을 두려
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정한 비참함을 아는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
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열 
명의 두령들이 본 것
은 결코 인간의 연약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느낀 것은 자신의 전투력이 
적군의 그것보다 우수하기만 하다면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적과 싸워서 이
길 수 있을 것이라는 더없이 교만한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주신 적개심(창 3:15)으로 인하여 전투하는 교회의 본분
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대한 악의 세력과 마주하고 있는 연약한 우리가 스스
로 전투능력을 쌓음으로써 위안을 얻으려한다면,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광야
교회가 걸어갔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느끼는 막연한 부족함이 아니라 존재적 비참함과 죄를 절실하게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여호수아와 갈렙이 지닐 수 있었던 진정한 위안과 신앙의 역동성
을 우리 교회가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처지 알아야

이제까지 인간 본성의 뿌리깊은 죄와 비참함을 일깨워주는 하이델베르크 요
리문답 제1부에 해당하는 11문까지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12문부터는 제
2부를 시작할 것입니다. 바로 구속이라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내용입

다. 인간의 본질적 죄와 비참함을 깨달은 우리가 이 내용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