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omeless
< 이영란 사모, 좋은소식교회 >
“나그네 같은 우리들에게 교회를 주신 주님이 고마워”
“집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버지 집이에요, 바로 내 집에 온 거예요, 제가 옆에 있으니 마음 편히 가지세요!”
주눅이 들어있는 그녀를 옆에 앉히고 안심시켰다. 공원에서 새에게 먹이를 주던 그녀와 만난 지 거의 백일쯤 된 것 같다.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오직 한 가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마음으로 거의 매일 만나왔다. 한두 번 도움이나 주고 말았을 텐데 이렇게 신중하게 만나온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읽은 책(나의 고민, 나의 사랑/ 필립 얀시) 때문이었다.
책 내용을 나누던 중에 이미 그 아줌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기에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맞아주었다. 소박하지만 진실된 환대 속에서 편안히 예배드리고 식사까지 하고 갔다.
석 달이 넘도록 그녀의 회색 츄리닝은 바뀌지 않았다. 조그만 배낭에 무엇인가 가득 했다. 비오는 날은 팔각정에서, 그렇지 않은 날은 나무 아래 벤치에서 밤을 지냈다. 누군가 도움을 주면 한 두끼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때로 운이 좋은 날은 찜질방에서 자면서 옷도 빨 수 있었다. 친구로 만나기 위한 마음이 있었기에 작은 것만을 조심스럽게 나누었다.
처음에는 주로 쌓여온 원망과 증오심을 토해냈다.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형제들, 이렇게 만든 남편에 대한 배신감, 마찬가지로 친구와 이웃들 나아가서는 가진 자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병에 걸린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던 교회마저 자신을 더 비참하게 하는 것 같아 발걸음을 끊게 되었다는 고백들을 들으며 공감하게 되었다.
얀시의 책에서도 한 알코올 중독자 역시 “교회에는 당당하고 안정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발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었다.
교회가 가시적이고 숫자적인 비전과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직과 행사, 프로그램 속에서 오히려 주님의 제자의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지, 조용히 발을 씻기시는 주님을 본받아 더 낮아져 세상을 섬기기가 어렵다고 언급하고 있었다. 세상의 그늘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교회를 집과 가족으로 만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절박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 또한 한 사람이 어떻게 노숙자가 되는지 가장 낮은 세계에 발걸음을 들여놓으면서 하나하나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동네 주민이었고 직업도 가지고 있었으며 급조결혼해서 남편과도 살았다. 그러다가 암 수술을 받고 많은 돈을 쓰게 되면서 결국 남편의 칼부림으로 힘든 다리 수술을 하고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후에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형제들의 도움도 끊기고 결국 길에 나앉게 되었다. 그리고 집없음(homelessness)의 그 막막한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프레드릭 뷰크너는 ‘우리는 모든 친숙한 것들 속에서 안도감에 둘러싸여 궂은 날씨에 피할 수도 있고 힘들 때 틀어박혀 상처를 핥을 수도 있지만 아직 비바람을 피해 누울 건물 구석구석을 찾아 어두운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나는 밥을 푸면서 혹은 비가 오는 소리를 들으며 그분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작은 도움을 주긴 하지만 가서 배부르게 하고 따뜻하게 하라고 말하는 사람일뿐이었다. 뷰크너가 ‘다른 사람의 절실한 필요를 외면하고, 다가가야 한다는 내면의 깊은 책임감에 대해 눈을 감는다면 우리는 어디에서도 평안할 수 없다’고 한대로라면 안정된 집안에 있다 해도 그들을 돌보지 않는 우리 역시 홈리스라는 뜻이 아닐까!
놀라웠던 것은 늘 담소를 나누던 아줌마들도 내가 그녀를 만나는 것을 보면서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청소 미화원들도 격려하듯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벌써 옷가지 등 도와준 분도 있었다.
특히 놀란 것은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매우 공격적이어서 대화를 피해오던 분이 며칠 전에는 “그 노숙자 아줌마를 어떤 식으로 만나고 계시는지… 어떻게 돕고 계세요? 교회에는 그런 시스템이 있을 것 같은데, 나도 같이 하고 싶으니 좀 알려 주세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우리들에게 부담이 되던 이 노숙자 한사람으로 인해 오히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그녀를 통해 그 외에도 10명이 넘는 노숙자가 공원에 있다는 것과 간헐적으로 빵과 우유 등 도움을 주는 단체나 개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함께 우리가 아니 우리 교회가 작은 것부터라도 지속적으로 섬기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듯 책을 읽게 하시고 동시에 그녀를 내 옆에 이끌어 오셔서 가족으로서 교회, 세상을 섬기는 교회를 고민하게 하신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벌써 그녀는 점점 우리 교회를 가족으로 느끼기 시작했고 추석명절에도 성도들의 사랑을 느꼈다.
이분을 생각하면 주의 피로 세우신, 영원한 집에 가기까지 홈으로서의 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뿐이겠는가, 우리 역시 아버지 집을 향해 가는 이 땅에서의 고독한 홈리스이다.
또한 말구유로 오시고 이 땅에서 머리 둘 곳 없이 우리보다 먼저 홈리스(Homeless)로 사셨던 주님! 그래서 우리들의 영원한 홈(Home)이 되신 주님께 얼마나 고마운지, 누구보다도 내가 더 고맙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