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포에서 온 편지>
선한 이웃들의 행렬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온 국민의 관심과 사랑 있어 아름다워”
한해를 보내며 다가오는 새해를 기다리는 어촌의 조그만 마을에 그날도 여
느 날처럼 희망의 아침이 활짝 열렸습니다. 바닷가의 겨울은 한가하지만 예
년과는 달리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어서 가족끼리 모여 내년의 풍어를 기대하
며 미뤄두었던 그물과 주꾸미잡이를 하기 위해 소라껍데기를 손질하고 있었
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바닷가
이른 아침 집안 구석구석을 진동시키는 심한 기름 냄새로 온 동네가 발칵 뒤
집혔습니다. 집집마다 보일러를 점검해 보거나 혹시 이웃집에 기름 배달을
하였나 문의하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오
후 뉴스 시간에 그 어마어마한 유조선에 구멍이 나서 앞 바다에 기름이 쏟아
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튿날 일찍 남편과 함께 기름 유출 현장에 갔습니다. 그 넓은 모래사장은
간 곳 없고 검은 기
름이 뒤덮었으며 파란 바닷물은 온통 검은 기름으로 물결
치고 있었습니다. 고약한 악취는 구토를 일으키고 현기증을 일으켰습니다.
검은 재앙의 소식을 듣고 어느새 달려온 봉사자들이 장화를 신고 고무장갑
에 방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띠가 길게 늘어서서 바케츠로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듯이 끝없는 기름을 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직후라 군인, 경찰
그리고 취재 차량과 많은 봉사자들로 인하여 혼잡했습니다. 심한 기름 냄새
로 인하여 숨을 쉴 수조차 없었지만 그 누구하나 싫은 기색없이 혼신의 힘
을 다하여 기름을 퍼올리지만 모두가 침통하고 안타까운 모습들이었습니다.
현장을 접한 우리들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전쟁을 겪어 보지 않았지만 그 참
담한 모습을 여기에서 보는 듯 하였습니다.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만 나왔습
니다. 그리고 절망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하며 고통의 절
규만 입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주일예배 때 모인 성도들의 얼
굴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햇볕과 바닷바람에 그을린 주름진 얼굴은 웃음을 잃고 슬픔조차 표현하지 못
한 무표정한 모습들은 섬뜩하기까지 했
습니다. 평생을 바다와 같이 했으며
눈만 뜨면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것을 한 순간에 모두 잃어버렸고
죽음과 같은 암흑의 긴 터널에서 헤어날 시간들을 가늠할 수 없기에 더 참담
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침이 밝아 오지만 눈을 뜨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꿈이었으
면 하는 바램이었지만 누워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뉴스를 보고 걱정을 하며
전화를 해주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어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교
회와 사택을 지을 때도 그 많은 어려움을 견디었고 성도들과 남편 그리고 20
여명의 일군들의 식사를 매일 힘들게 준비하면서도 즐거움으로 했었는데 성
도들의 생활이 무너졌으니 교회가 걱정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웠습니다. 위로의 말도 듣고 싶었습니다. 전화로 이곳 소식을
알리고도 싶었지만 뉴스를 보고 먼저 전화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던 중
총회 사회부에서 목사님들과 장로님들께서 현장 답사를 오셨습니다. 참 반가
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와 봉사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서해 바다를 찾아오는 여름 피서철보다 더 많은 자원봉사 차량들
이 줄을 잇는 것을
보고 남편은 고마움에 목이 메여 눈물을 흘린다고 했습니
다.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웃들이 가족임을 알았습니다. 이번 사건
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민족들의 사랑도 알았습니다.
7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세계 각국에 흩어져 공부하던 학생들이 나라를 지키
기 위해 싸웠던 유대인들처럼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 국민들이 태안반도에 모
여들어 사랑과 힘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서해안의 낭
만 대신에 자원봉사를 통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우
리가 한 민족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많은 현수막이 봉사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라는 문구가 나를 감동시킵니다.
상처가 치유되면서 새살이 돋아나듯 기름으로 범벅된 모래밭과 바위와 바닷
물이 점차 본래의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오면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반
드시 제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연말의 도시 거
리에는 자선 냄비의 종소리와 네온의 반짝임이 사람들을 들뜨게 하고 즐겁
게 하지만 그러한 기쁨들이 이곳에는 없습니다.
서해안을 살리기 위해 봉사
자들의 따뜻한 마음들과 사랑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곳을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성경에 나오는 선한 이웃이 생각났습
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다가간 사람은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닌 사마리
아 사람이었던 것이…… 나는 누구의 이웃이었으며 또 나의 이웃은 누구였
던가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마디의 말이 절망과 상처의 아픔을 남기
기도 하지만, 한 마디 위로의 말이 삶에 용기와 새 힘을 주어 생명을 살리기
도 하는 좋은 약이 되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삶이란 변화무쌍한 날씨와도 같으며, 씨를 뿌리지 않고는 열매를
얻을 수 없음도 알았습니다. 시련과 많은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서도 많은 사람들과의 좋은 만남도 있었기에 외롭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자녀교육에 “내일은 잘 될 꺼야” 하
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들에게 선한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음
에 오늘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태풍이나 화재 등은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복구되지만, 생태계의 파괴로 인
한 재난은 수 십 년이 지
나야 회복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많은 사람이 서해안
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해안 사랑 끝이 없을 것
선한 이웃들의 아름다운 동행들이 있기에 이전과 같은 좋은 풍광과 낭만, 그
리고 더 좋은 먹을거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시간이 속히 오리
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