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생각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젊은이들
민경희 사모_평안교회
우리 딸아이가 고3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끝내고 스쿨버스를 타
면 골목 앞에 내리는 시간이 밤 10시쯤이었다. 큰 길에서 버스를 내려 집에
오기까지 그리 멀지도 않았고 골목이 특별히 어둡거나 위험하지도 않았지만
매일 두 아들 손을 잡고 마중을 나갔다.
날마다 기다렸던 딸아이 하교 길
공부하고 늦게 오는 딸을 격려하고 싶기도 했고, 유난스럽지만 빨리 보고 싶
기도 하고, 특히 그 시간에 하는 일도 없으면서 집에 앉았기도 이상해서다.
딸애보다 2살, 9살 어린 아들들은 누나를 기다리면서 버스를 누가 먼저 알아
보나 내기를 하기도 하고 누나를 만나면 서로 다투듯이 가방이나 도시락 통
을 받아들었다.
반갑게 동생들 머리를 쓰다듬고, 가슴에 꼭 안기도 하고, 누나랑 어깨동무
를 하고 마치 먼 길을 다녀온 누나를 맞듯이 좋아하는 세 아이들 모습을 보
노라면 가슴 가득히 행복
이 넘쳤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도 하고,
계절 따라 붕어빵이나 군고구마를 먹기도 하면서 매일 소풍처럼 그 시간을
기다렸다.
하루는 조금 늦어서 스쿨버스가 도착하는 것은 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길에
서라도 만나자며 집을 나섰다. “엄마 힘든데, 안 나와도 돼요” 딸애는 같
은 말을 하면서도 반갑고 행복한 웃음을 예쁜 얼굴 가득 담아주었고, 나는
그 웃음을 기다렸나보다. 딸에게 하는 내 대답도 늘 같다. “엄마 좋아서 하
는 일인 걸? 엄마 나오니까 너두 좋지?” 늘 하던 일이라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일을 그만두는 건 오히려 습관을 그만두려고 정신 차리고 애쓰는 것 보
다 어려운 것 같았다.
아무튼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서 딸을 못 만났다. 집에 먼저 갔나? 다른
길로 갔을 까? 버스가 일찍 도착했나? 이미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
이들 걱정할 가봐 말을 내지 않았지만, 사실은 말을 내면 내가 갑자기 더 걱
정이 쌓일 것 같아 달음박질 내기를 하면서 집에 갔는데 딸아이는 집에도 없
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다시 버스정류장
까지 걸음을 재촉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고갔다. 빵집이며 분식집도 있
고 음식점들, 오락실, 문방구도 있었지만 길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을 내다
볼 리도 없고 봤다고 해도 기억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누구에게 물어보나? 얘가 오늘 무슨 색 옷을 입었지? 내가 머리를 어떻게 빗
겨줬더라? 무슨 머리핀을 꽂아줬지? 사람들에게 우리 딸을 보았느냐고 어떻
게 뭘 물어보면 되는 거지? 머리가 정지된 것 같았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누굴 붙들고 뭘 물어봐야 할지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히 우리 아이가 늘 내리던 같은 자리에서 버스를 내렸을 텐데 그 아이
를 누가 봤을까? 본 사람은 이미 어느만큼 어디로 간 걸까? 남편은 합신생활
관 관장으로 있던 시절이라 차를 가지고 동네를 돌아볼 수도 없어서 더 마음
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두 아들 녀석들은 누나를 부르며 울고 나도 눈물
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숨을 쉬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딸아이가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 상한 친구 얘기를 들어주다가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연락을 하기까지 세시간 가까이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당시
언론 매체들에는 인신매매나 실종되는 사람 얘기들이 심심찮
게 보도되고 있
었다.
그 후로는 아침에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난 후 기도시간에 그런 기사를 읽고
예전보다 더 깊이 기도하게 됐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
느 순간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황당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기도
를 하게 됐고 청소년들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로도 얼마
간은 기도하다가도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었다.
“우리 아이들이 오늘 무슨 옷을 입고 갔지?” 내겐 가장 소중하고 귀한 아
이들, 눈을 감아도 환하게 보이는 우리 아이들을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게
할 어떤 특징이 겨우 빨간색, 파란색… 무슨 색깔의 옷, 어떤 머리 모양으
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기가 막혔었다.
아름다운 청년들,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아프카니스탄에 아직도 억류되어
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오겠다면서
활짝 웃는 모습을 남기고 떠난 젊은이들이 한 장 사진 속에서 아직도 웃고
있다.
두 사람이 이미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
두 자매가 돌아왔다. 아! 석방되는 것을 양보한 자매는 누구일까?
아직도 19명이 남아있다. 모두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인터넷에 그들은 죽어야 한다고, 그들을 죽이라고 탈레반에게 메일을 보냈
던 젊은이들 3명이 잡혔다. 그들은 대학생과 공익근무를 하는 젊은이였다.
메일을 보낸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죽어야 한다는 자신
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피랍된 이들 죽이라고 하다니
이 나라가 어떻게 된 것일까?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된 것일까?
아, 우리의 아들들, 우리의 딸들, 하나님의 자녀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