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자교수의 원천골편지<29>
희망, 그 생명력 안에…
유화자 교수_합신 기독교 교육학
몇년 전 미국의 지방 모 신문에 한 철도역무원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
었다. 닉 시즈맨이라는 이름의 이 역무원은 젊고 건강하였으며 원만한 성격
의 소유자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동료들이 다른 동료의 생일축하를 위하
여 함께 퇴근하면서 닉이라는 동료가 냉장 차량 안에서 작업중인 사실을 깜
빡 잊고 냉장 차량의 열쇠를 밖에서 잠근 채 퇴근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자신이 냉장차에 갇힌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이 사람은 불안하고 조급한 마
음으로 안에서 마구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댔으나 아무도 밖에서 응답하
는 사람이 없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냉동차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나는 얼어 죽고 말 것이다!”라는 불
안과 공포에 휩싸인 이 사람은 갇힌 차 안에서 몸부림을 하다가 나중에 칼
로 나무 바닥에 이렇게
글을 새겼다. “너무 추워서 온 몸이 마비되고 있는
것같다. 이대로 빨리 잠들어 버리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이 글이 아마 세상
에 남기는 나의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동료들이 냉장차 문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닉이 그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동료가 그 안에서 작업중인 사실을 모르고 밖
에서 문을 잠그고 퇴근해버린 부주의와 태만한 직무 태도, 냉장 차 안에서
밤을 보낸 역무원이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일상으로 접할 수 없는 엄청난 충
격이어서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난리가 났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얼마 후 밝혀졌다. 이 사람의 시신을
병원으로 옮긴 후 해부해 본 결과 이 사람은 추워서 얼어 죽은 것이 아니었
다. 그가 냉장차에 갇혀 있던 날 밤 냉장차는 작동하지 않았으며 차 안의 온
도는 섭씨 13도였다. 이 사람은 추워서 얼어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
어 죽을 것이다”라는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서 죽게 된 것이었다.
삶의 과정속에서 누구나 견디기 힘들고 어려운 일들에 직면할 수 있다. 그
상황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때로는 차라리 죽는 것
이 낫겠다고 생각
될 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 휘몰리면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자신이 직면한 현실에 대한 긍정적인 어떤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기보
다는, 그 상황 자체의 부정적인 측면을 자신에게 더 크게 부각시키면서 지
레 절망과 좌절에 빠져버리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상황속에서도 냉철한 이성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그 상황의 탈출구를 모색한다면 예상 외로 그 속
에 희망적인 긍정적 요인들이 잠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닉이라는 사
람이 자신이 냉장차에 갇혀 있다는 사실만을 자신에게 강조하면서 자신이 얼
어 죽을 것이라는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죽
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람이 갇혀 있던 냉동차가 그 날 밤 작동하지 않았으
며, 그 차 안의 온도는 사물이 얼어 붙는 빙점 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상온
13도 쯤이라는 사실을 곧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음 날 아
침 동료들이 냉장차의 문을 열 것이라는 사실도 동시에 깨닫게 되면서 자신
은 죽음과는 무관하다는 확신과 희망속에서 이 사람은 그날
밤 차 안에서 느
슨하게 편히 잠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냉장차 안에서 죽고 말 것이라는 절망감 때문에 자신의 현실
속에 내재되어 있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요인에 이 사람은 맹인이 되고 말
았다. 그래서 외적이고 물리적인 어떤 절대적 죽음의 요인보다 자신의 절망
과 공포 때문에 이 사람은 결국 죽게 된 것이다. 절망과 공포, 좌절이 닉이
라는 건강한 한 젊은이를 살해한 것이다.
단테는 지옥 입구에 “일체의 희망을 버려라”는 글이 새겨져 있을 것이라
고 말하였다. 지옥이란 희망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곳, 곧 ‘희망’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는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지구의 종말 후에 올 무
서운 지옥에만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무수한 가능성
과 긍정적 요소, 감사의 조건들로 가득 찬 현실속에서도 그 희망과 감사를
발견하고 느낄 줄 모르는 ‘영적 무지’와 ‘감사 불감증’이 많은 사람들
을 희망이 없는 지옥으로 내몰고 있다.
현재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또 삶의 여러 분야에서 앞으로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비
관적인 미래관
이 계속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희망과 감사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안
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이런 비관적 미래관에 좌우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하여 희망의 중요성과 그 희망의 엄청난 저
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우리 남한 면적 삼분의 일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영토와 5백만 명 정도의 인구로 2억이 넘는 아랍계 민족들과 계
속 전시상태에 있다. 1948년 건국 이후 60여 년간 주변의 아랍국들과의 무수
한 전쟁 속에서, 인간의 생각과 계산으로는 승산이 없는 전쟁임에도 불구하
고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계속 자신들의 승리에 대한 희망과 꿈을 잃지 않
고 있으며, 그 저력으로 계속 세계의 이목과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현실과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무관하게 모든 희망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희망의 저력을 체험하는 복이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