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르쳐 줘!”(13)
유화자 교수/합신 기독교교육학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굵은 빗줄기로 변하면서 늦가을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
다. 밤이 되면서 기온이 떨어지고 날씨도 추워졌다.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
가 바바리 코트 깃을 세우며 귀가를 재촉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더욱 분주하
게 하던 어느 날 밤, 한 택시 기사가 손님 한 분을 태웠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손님을 태운 택시 기사와 손님 사이에 승차 시 맨 처음 이루어지는 당연한 절
차였다. 그러나 핸들을 잡고 행선지를 기다리는 택시 기사에게 날아 온 손님
의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황당한 대답이었다.
“안 가르쳐 줘!”
“? ? ? !”
너무 의외의 대답에 택시 기사는 말문이 막힌 채 한동안 핸들을 잡고 백 미
러(back mirror)로 손님의 얼굴과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잔뜩 화가 난 듯 내
뱉는 말투며, 건드리기만 하면 뭔가 터트릴 것 같은 화난 얼굴 표정이 택시
기사를 긴장하게 하였다.
손님과 택시
기사 사이에 한동안 긴장감이 흐르면서 기사와 손님 모두가 다
음에 이어질 대화와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
게 손님을 대해야 할지 당황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택시 기사의 입에서 의
외의 말이 나왔다.
“손님, 죄송합니다. 제가 손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였지요? 추운 거리
에서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이제 화 푸시고 빨리 가시지요.”
부드럽게 웃으면서 사과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택시 기사의 따뜻한 배려에,
잔뜩 화가 나 있던 손님의 경직된 표정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잠시 후 말문이
열렸다.
“동작동으로 갑시다!”
동작동에서 내린 이 손님은 택시 기사에게 택시 요금의 두 배를 지불하면서
자신의 무례와 택시 기사의 따뜻한 손님 배려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였다. 질
척거리며 가을비가 내리던 어느 날 밤, 한 택시 안에서 이루어진 택시 기사
와 손님과의 대화 내용과 풍경이었다.
이 초로의 신사는 늦은 밤거리에서 오래 택시를 기다렸으나 잽싸게 가로채
는 무례한 사람들 때문에 택시를 잡지 못하고 분노해 있을 무렵, 마침 승차하
게 된 택시 기사에게 자신도
모르게 분노를 발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당한
손님의 분노에 자칫 두 사람의 감정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상황이, 택시
기사의 지혜와 따뜻한 배려로 정겨운 삶의 한 단면으로 전환되고 있는 장면이
다.
심리학이나 상담학에서 말하는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을 굳이 이 기사
에게 적용시켜 본다면, 이 택시 기사는 손님의 마음과 감성을 짧은 시간에 정
확하게 읽고 분석한 후, 적절한 대처를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기사는
‘정신분석’이라는 말 자체를 모를 수도 있고,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진단 분석하고 대처한 결과라는 거창한 심리학적 이론을 생각해 본 적
도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기사의 삶과 인격 속에서 피어 난 따뜻하고 아
름다운 삶의 지혜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지식’ 있는 사람은 많지만, ‘지혜’ 있는 사람을 찾기
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지식(knowledge)과 지혜(wisdom)는 다르다. ‘지식’
은 일반적으로 어떤 의도적인 교육행위를 통하여 터득될 수 있는 어떤 사물
에 대한 ‘앎’이라고 한다면, ‘지혜’는 의도된 교육과 필연적 연계성이
없
이도 그 체득이 가능한, 생활 속에 나타나는 삶의 여유와 예지라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지혜는 삶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하는 인생의 윤활유 같은 것이라
고 할 수 있다. 지혜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특히 그 빛
을 발하는데, 지혜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또한 긍정적
동기부여와 격려를 통하여 사람들의 삶을 기쁘고 윤택하게 한다.
지도자들에게는 특별히 지혜가 필요하다. 지도자 된 사람은 기본적으로 지
식 면에서는 일단 검증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서 지식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어떤 공동체의 목표 달성을 위
한 과정에 필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리더십 발휘에는 지도자의
원만한 인간관계가 필수적 요인이 된다. 동시에 지도자의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지혜의 절대적 필요성이 대두된다. 실패하는 지도자들의 실패 요인
의 85%가 잘못된 인간관계에 기인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보고는, 이미 세계적
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크리스천 리더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돕는 책임과 의무를 사람들과 하나님
에게서 공적으
로 위임받은 공적인 종(public servant)이라는 성경적 리더십
의 원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지도자라는 위치와 직위가 부여하는 권위를,
마치 자신의 독재성과 특권행사를 위한 자격증(license)이라도 되는 양, 돈키
호테적 착각 속에 빠져있는 지도자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있다는 것은 안타
까운 일이다.
종말론적 시대의 고통과 삶의 어려움으로 힘든 인생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
게, 지식(knowledge)은 물론 지혜(wisdom)와 덕(virtue)을 갖춘 성숙한 크리
스천 리더들이 많이 배출되어서 이 사회에 훈훈한 삶의 향기를 발할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