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졌다’는 말의 바른 이해
< 김영철 목사, 미문교회 >
“벌거벗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수치감이 발생한 것”
1. 사람이 범죄하게 된 배경
불행히도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서 배은망덕한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자신들을 지으시고 가장 아름답고 좋은 곳에서 가장 복된 삶을 누리게 해주신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영원하며 복된 삶을 스스로 포기하고 죽음에 이르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이들은 아무에게서도 강요받지 않았고,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그 길을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잘못은 몽땅 그들의 책임이며 그 대가는 고스란히 그들의 몫입니다.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것으로 입증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사람에게 사랑과 은혜로 변함없이 신실하게 대해 오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하나님께 불만을 품거나 그분의 말씀을 믿지 못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립니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이 여인의 마음에는 이미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작은 제한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제한을 스스로 확대 해석하여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혹은 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입니다.
2. 하나님 대신 뱀을 신뢰한 사람들
도저히 타협의 여지가 없는 정반대의 두 의견은 언제나 참과 거짓을 나눠 갖습니다. 하나는 참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입니다. 둘 다 참이거나 둘 다 거짓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 의견을 취하는 것은 그 의견을 말한 자를 신뢰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고(창 2:17), 뱀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여인은(결국 남편도) 뱀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뱀을 진실한 존재로 인정한 것이며 그 대신 하나님은 거짓말로써 자신의 삶을 위협해 온 나쁜 분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뱀은 하나님께서 먹지 못하게 하신 이유를 하나님의 시기심 또는 견제(牽制)로 제시하였는데(창 3:5), 이들이 이러한 뱀의 말을 받아들여서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의 결정은 하나님을 ‘자신들이 하나님 같이 되는 길’을 막아 버린 나쁜 존재로 간주하였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진실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짓을 참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사람의 눈에는 사물이 있는 그대로 진실 되게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거짓이 진실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뱀의 말은 말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새빨간 거짓말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졌으나 못 볼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3. ‘눈이 밝아졌다’는 말의 의미
‘눈이 밝아졌다’(직역 – “그들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는 것은 ‘이제껏 뜰 수 없었던 눈을 뜨게 되었다’든지 ‘어두웠던 눈이 밝아져서 잘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식(認識)의 변화를 뜻하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벗은 줄을 알고”(창 3:7)라는 말은, 자신들이 이제까지 벗은 줄 몰랐다가 이제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벗은 것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뱀의 말대로(창 3:5)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지혜롭게’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벌거벗음에 대해 부끄러움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그들이 자신의 벌거벗음에 대해 상대방 앞에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창 2:25).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벌거벗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변했기에 부끄러움 정확히 말하자면 수치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생긴 이 변화는 그들 두 사람의 관계를 어색하고 거리감이 생기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생긴 치명적인 변화란 한마디로 말하면 친밀함이 깨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아담에게 (물론 그의 아내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