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계층特權階層의 존재_조석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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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권계층特權階層의 존재 ‘ 

< 조석민 목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 

“교회 직분은 성도 위해 온전하게 봉사하기 위한 것” 

특권계층이란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특권을 누리는 계층이나 
또는 그런 사람들을 의미한다.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특권계층 

우리나라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 
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 
다. 국민이 주인인 우리나라에 특권계층이 존재하는 것인가? 

믿기 어렵지만 특권계층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 
다. 이미 세상에 다 알려진 바대로 검찰의 권력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 
력으로 특권계층의 상징이 된 듯하다. 

최근 문화방송이 보도한 검찰의 스폰서 문화가 공개되면서 검찰이 어느 정 
도 특권을 누리고 있었는지 그 일부분이 드러난 것이다. 문제는 드러난 검찰 
의 스폰서 문화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검찰의 시각은 스 
폰서 문화를 ‘온정주의로 인한 인간관계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 
럼 보이는데, 이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특권계층은 검찰만이 아니다. 국회의원 역시 국민이 선출한 국민을 위한 의 
정 활동을 하는 사람들인데, 정치권력을 누리는 계층이 되고 말았다. 특권계 
층답게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혜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 
도이다. 

그 한 가지 예로 국회의원은 국회법 31조에 따라 국유의 철도, 선박, 항공기 
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국회 폐회(閉會) 중에는 공무의 경우에 한한다 
고 되어 있다. ‘국유 철도’에는 한국고속철도(KTX)도 포함된다. 국민을 위 
한 의정 활동으로 꼭 필요한 경우라면 특별 혜택이라도 베풀어 주어서 의정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전교조교사 명단 공개 금지와 관련된 법원의 판결을 두고 한 국 
회의원이 ‘조폭판결’이라는 표현을 써서 판사의 판결을 비하(卑下)해 버 
린 사건은 말 그대로 입법 활동을 하는 국회의원이 조폭이 아니라면 입에 담 
을 수 없는 말이다. 국회의원이 법원을 향하여 이런 발언을 하고 법을 지키 
지 않는다면 일반 국민은 어찌하란 말인가!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 법원은 그 법을 근거로 위법한 사항을 판단하여 양형 
하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삼심 제도가 있고, 또한 헌법 소원 등 법원 
의 판결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이의를 제기하여 다시 판결받을 수 있는 권리 
를 제도적으로 잘 마련했는데,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법을 지키지 않는 것 
은 특권의식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특권계층은 이 정도뿐 아니라 한국의 2%에 해당하는 재벌들 역시 재벌 권력 
을 휘두르는 특권계층에 속한다. 이들이 소유한 부는 권력을 창출하는 원천 
으로 그 힘은 방향을 알기 어려울 정도이다. 재벌의 특권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의’에 대한 개념조차도 ‘정의는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다’고 바꾸어 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우리는 재벌이 얼마나 특권의 
식 속에서 살아가며 무소불위의 힘으로 세상을 주무르는지 알 수 있다. “유 
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은 재벌과 변호사 및 검찰의 합작품이라고 해 
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부를 소유한 것으로 특권계층이 되기 위한 재산은 어느 정도일까? 
그들의 부동산 소유를 통해서 살펴보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손낙구 
의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알려 주는 정보에 의하면 집을 여러 채 소유한 
집부자 100명이 소유한 전체 주택 수는 1만 5,564채로 1인당 평균 156채를 
소유하고 있다. 

100명의 다주택 소유자 가운데 가장 많은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혼자 1,083 
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부동산 및 주택 소유의 윤리 도덕 
적 기준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종교 속에서도 특권계층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종교는 잘 모르겠 
지만 특히 개신교 안에 특권계층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종교 속의 특권 
계층은 유대인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1세기 당시 유대인 
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과 족보를 앞세워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거 
룩한 백성이라는 사상 속에서 특권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이방인들을 차별하 
였다. 

하지만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2:10)고 선언하고, 유대인 
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예수 그리 
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참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특권의식에 대하여 분명하게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 
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에다가 할례 받았다고 해서 할례 
가 아닙니다”(롬 2:28, 표준 새번역)라고 선언한다. 바울은 기독교 안에서 
특권계층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고 선언하면서 특권계층을 부인한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카톨릭 종교에서 사제들이 누렸던 특권을 거부 
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직자들이 특권계층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은 목사라는 직분이 특별한 사회적 신분과 계층 
이 되어 버린 것 같고, 실제로 특권계층으로 존재하며 교회 안에서 무소불위 
(無所不爲)의 권력으로 군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나 안수집사, 권사 등의 모든 
직분이 마치 특권계층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버렸다. 교회 안의 모든 직분은 
하나님의 교회인 성도를 섬기며 보살피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가난하 
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맡은 것인데 이제는 
명예와 특권을 누리는 직분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교회에 특권계층 
있을 수 없어 

교회의 여러 직분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 
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고 교훈한 바울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