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123)_
하나님의 반대편_딤전 6:17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하게 주시는 하나님”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나의 입장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반대편은 꼭 있다.
그 반대편의 성격이 고집스럽거나 그가 제시하는 논리가 치밀하거나 그 편
에 많은 사람이 가담되어 있을 때는 불쾌함을 넘어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된
다. 가장 화가 나는 경우는 나와 절친한 친구가 반대편의 손을 번쩍 들어줄
때이다. 이때는 속이 상할 정도가 아니라 뒤집어지고 눈알이 튀어나온다.
친구가 반대편에 설 때 가장 가슴 아파
그래서 우리는 우리 편 사람이 반대편에 서서 거드는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
지지 않도록 열심히 단속을 한다. 반대편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자
세하게 일러주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강도 있게 알려준다. 이렇
게 할 때 사람들은 반대편으로 가는 것을 그치고 우리 편에 견고하게 자리
잡는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반
대편으로 가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사
도 바울에 의하면 이런 오류는 특히 이 세상에서 부한 사람들에게 쉽게 발생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 특히 부한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첫째는 높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며, 둘째는 재물
의 불안정함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높게 생각하는 것은 교만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참 감람나무)
의 꺾임을 본 이방인들(돌 감람나무)이 교만하면 똑같이 꺾임을 당할 것이라
고 말할 때 비슷한 용어를 사용했다(롬 11:20). 또한 높게 생각하는 것은 자
의(自意)를 가리킨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서로를 위한 생각을 가져야지
자기에게서만 나오는 생각을 갖게되면 공동체가 파괴될 것이라고 말할 때 이
와 비슷한 용어를 사용했다(롬 12:16).
사도 바울은 재물을 불안정한 것으로 간주한다. 재물은 풀의 꽃같이 지나간
다(고전 7:31; 약 1:10-11). 그래서 불안정한 재물에 소망을 두는 것처럼 불
안한 일이 없다. 재물에 소망을 두는 것은 흔들리는 물 위에 발을 딛는 것
과 다를 바 없고, 흩어지는 바람을 손으로 낚아채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두 가지를 하지 말라고 말한 다음에 한 가지를 해야 한
다고 역설한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
지 말고 …하라”는 구조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반대편이 무엇인지 명확하
게 보여준다. 하나님의 반대편은 첫째로 재물의 불안정함에 소망을 두는 것
이며, 둘째로 높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특히 부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만일에 우리가 아주 짧은 시간이라
도 하나님의 반대편에 선다면 사도 바울의 속은 뒤집어지고 그 눈알이 튀어
나고야 말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두 가지 반대편에 들
어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소상하게 일러주고, 이어 우리 편인 하나님이 어
떤 분인지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 편인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주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첫째 특징
은 자신의 것을 수여하고 허락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은
이기적인 사람들처럼 자기의 것을 꽉 움켜쥐고 있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손을 벌리고 팔을 펴기를 좋아하신다.
나아가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신다. 하나님은 심지어 자기의 아들까지
도 아끼지 않고 내주셨다. 하나님의 주심에는 희생적인 성격이 들어있다. 그
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심은 총체적 수여라는 말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후히” 주신다. 사실 이 단어의 뿌리는 앞에 나온 “부
한 자들”과 “재물”이라는 단어와 동일하다. 이것은 하나님이야말로 참으
로 사람을 부자로 만들 수 있고 물질을 부요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요하게 만들어 주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목적은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후히 받아 누리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누리고, 그렇게 하여 하나님
자신을 누려야 한다. 사람의 중요하고 가장 고상한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누
리는(enjoy)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하나님 편에 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