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과 의복_조병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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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의 목회편지(111)딤전 6:8

양식과 의복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는 궁금한 것들이 많다. 그것은 미증유의 놀라
운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서들이 말을 절제하고 있어서 세부 사항으로 들
어가면 궁금증이 더욱 심해진다. 

부활하신 주님이 입으신 옷 궁금해

아리마대 요셉은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마포로 싸서 무덤
에 안치시켰다. 그런데 부활의 아침에 소식을 전해들은 베드로가 무덤에 달
려가 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사라지고 세마포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무슨 옷을 입으셨을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발견한 아
담이 하나님에게서 옷을 받았던 것처럼 주님께서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옷을 
입었을 것이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
지 말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
니라고 가르치셨던 주님께서 부
활의 자리에서 친히 이것을 증명하신 것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인생의 기본 요소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성경도 이 두 가지 인생의 기본 요소에 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히 언급
을 한다. 예를 들어 애굽에서 나온 후에 불신으로 말미암아 사십 년 동안 광
야를 걸어야 했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만나를 먹이시고 의복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다(신 8:3-4). 
물론 거기에는 특별한 교훈이 들어있지만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셨음을 의미한다. 영광의 
세계에서 신자들이 누릴 삶에 관한 요한계시록의 설명을 들어보면 다 깨달
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떡이게 하는 부분이 있다. 거기에서 우리
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양식과 의복이라는 기본 요소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자주 걸림돌이 된
다. 첫째로 사람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 때문에 치사해진다. 사람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 그리고 몸을 감싸기 위해서 굴복하고 아첨한다. 사십 일을 주
야로 금식하신 주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친 것은 이런 인간의 치사함에 
대한 
거절이기도 했다. 또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입지 못하
는 이들을 무시하고 경멸한다. 야고보서가 편지를 쓰면서 거칠게 몰아붙였
던 부자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양식과 의복은 또 다른 면에서 걸림돌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의 부족함을 인생의 가난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먹지 못하
고 잘 입지 못하면 그것을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여긴다. 만일 그렇다면 광야
생활을 했던 세례자 요한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 가운데 속할 것이
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의 풍족함에서 인생의 부요를 발견
한다. 이런 사람들은 온갖 권모술수를 다 사용해서라도 잘 먹고 잘 입는 것
이야말로 행복이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고급한 음식을 먹고 
비싼 의복을 입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과시한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
의 속임수이다. 우리는 늘 여기에서 속는다. 
사도 바울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 것이라고 말한다. 이
것은 한편으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너무 없을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매여 살면 
안 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 말로 단순히 신자들이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
다는 교훈을 주거나 매사에 물건을 아껴쓰는 절약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교훈
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신자들이 양식과 의복
에 매인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의
해서 평가되는 존재가 아니다. 이 두 가지가 인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
본 요소라는 점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들로 인간의 모든 것을 판단해
서는 안 된다.

먹고 입는 것으로 평가할 수 없어

사람의 진정한 의미는 음식과 의복 밖에 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셨을 때나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주셨을 때
나 다같이 알려주시고자 했던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살 때 그리
고 하나님을 말씀을 따라 살 때 진정한 존귀함을 얻는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