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107) 딤전 6:2
“더 잘 섬겨라”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신자에게는 자신이 속한 사회를 부요하게 만들 책임이 있다. 사회를 유익하게 만드는
것은 신자의 사회적 영광이다. 신자가 자신의 사회를 부요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
한 일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됨됨이에 대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사회에서 인격을 인정받아야 한다.
신자는 사회에서도 인정받아야
그리스도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사회가 복을 받는 것은 보기에 아주 훌륭하다. 이것
은 옛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복이며, 요셉에게서 정말로 멋있게 실현되었
던 복이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신자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사회에
서 신자의 인격은 하나님의 동행을 증거하는 탁월한 도구가 된다.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아랫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푸는 것, 윗사람을 진
심으로 기쁘게 하는 것, 이런 모습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
를 안정
시키며 행복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우리는 사회의 안정과 불안정이 보통 예상하는 것과는 달리 아주 작은 인간관계에서 비
롯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학문과 지식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사람임에도 불구
하고 인간관계가 엉망인 까닭에 불쾌감을 조성하고 결국에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있다.
신자에게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 책임이 있다면 같은 신자를 행복하게 만들 책임도 있다
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말미암아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
이 유익을 얻는 것은 정말로 귀중한 일이다. 그가 더욱 힘있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도움과 협력으로 사회적으로 안정될 뿐 아니라 주님의 일을
더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기회와 여유를 얻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그에게 힘을 실
어준 신자에게도 언젠가는 매우 유익한 반대급부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자인 종에게 신자인 주인을 더 잘 섬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디모데도 이런 가르침
을 계승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는 이
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사실 주인도 종도 모두 신자인 경우에 종이 눈가림만 하는
요령을 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종은 같은 신자인 만큼 주인이 잘 봐주겠거니 짐작
하면서 일을 엉터리로 해치울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도 그런 신자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사업에서 경영주나 윗사람이 신자인 경
우 거기에 근무하는 그리스도인이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핑계로 업무를 대충하는
사례들이 종종 발견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믿는 상전이 있는 종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주의
를 주었다. 그것은 결국 신자인 주인의 사업을 불리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며, 그리고 마침내는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한 자신도 파멸에 빠지는 무서운 결말을 맞
이하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는 종들이 믿는 상전을 더 잘 섬
겨야 한다고 권면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믿는 종들이 믿는 주인을 잘 섬겨야 할 이
유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이기 때문이다.
신자인 종이 신자인 주인을 잘 섬겨 유익을 얻게 하면, 신자인 주인은 하나님
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믿는 주인은 믿는 종
의 섬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 이때 신자인 종은 주인의 믿음과 사랑을 더욱 굳게 만드는 도구가 된 것이다. 이것
은 신자인 종의 영광이다. 그는 비록 종이지만 믿는 주인을 더욱 큰 믿음과 사랑으로
인도하는 영광스러운 인도자이다.
더 나아가서 믿는 종에게는 믿는 상전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많
이 받고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확증시켜줄 의무가 있다. 신자인 종이 신자인 상
전을 잘 섬겨 유익을 얻게 하면, 하나님이 신자인 상전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
에 보여주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 나타내야
그는 결국 믿는 주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증명하는 통로인 셈이다. 그는 사
회적으로는 비천해도 영적으로는 너무나도 존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