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_조병수 교수

0
24

조병수의 목회편지(93)

딤전 5:13

게으름

게으름에도 가치가 있다. 온 몸이 부서질 정도로 머리도 회전하지 않고 모
든 뼈의 관절이 마비되고 심지어는 마지막 남은 힘줄마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할 정도로 전력으로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전력투구한 후에는 반드시 여유 있게 쉬어야 
한다. 

게으름에도 철학 있어야

평소보다 잠도 더 많이 자고 잔잔한 음악을 듣거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숲
속을 거니는 것이 좋다. 게으르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게으름을 피워야 한
다. 게으름에도 철학이 있고 신학이 있다. 긴장과 이완의 분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철학도 신학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조임과 풂의 절묘한 조
화 가운데 인생의 완성이 있다. 
그러나 나쁜 것은 게으름을 익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젊은 과부들의 문
제를 다루면서 그들의 나태함이 얼마나 큰 병폐인지 지적하였다. 조금 더 정
확하게 말하자면 사도 바울이 지적하는 그들의 
문제점은 그냥 게으른 것이 
아니라 “게으르기를 배운다”(They learn to be idle)는 데 있었다. 
사람이란 존재는 가만두어도 게을러지기 일수인데 이 젊은 과부들은 그런 상
태를 넘어서 아예 게으르기를 적극적으로 배웠던 것이다. 이것은 게으름을 
몸에 배어버리게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으름의 습관이란 게으른 것
이 뭐가 잘못이냐는 자기최면으로 시작해서 게으름을 점점 정당화하고 결국
에는 게으름을 즐기다가 게으름 그 자체에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게으름이 
처음에는 습관이 되고 나중에는 생활이 된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 게으름의 모양 한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게으름을 배
우는 젊은 과부들이 “집집에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이 말이 함유하고 있
는 첫째 의미는 게으른 자들이 자기 집을 전혀 돌보지 않는 것이다. 사도 바
울은 앞에서 여러 차례 자기 집을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갈파했다(딤전 3:4-
5, 12). 
게으른 자들은 자기 집을 엉망진창으로 내버려둔다. 그 대신에 게으른 자들
은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 이런 식으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밥이나 
얻어먹고 세상에 흘러 다니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입에 
올리며 잡담으로 하루
를 소일한다. 그들은 남의 집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나태
행각으로 말미암아 다른 집의 규칙적이며 정상적인 삶이 깨지든 말든 그들
의 머리 속에는 결례가 된다는 생각이 없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게으른 자
들은 다른 가정의 프라이버시를 아랑곳하지 않고 고스란히 망가뜨리는 무례
함을 저지른다. 
그런데 게으른 자들의 폐단이 이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더 큰 문
제가 있다. 사도 바울은 게으른 자들의 잘못을 몇 가지 더 지적한다. “게으
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어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
니.” 게으른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추가적인 문제점들 가운데 첫째는 망령
된 폄론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평을 늘어놓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는 것이다. 마치 디오드레베가 장로에 대하여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과 같다(요삼 10). 
게으른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란 결국 불평불만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게으름이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남의 
잘못으로 치부한다. 그들은 사회를 욕하고 교회를 비난한다. 그
들은 친구를 
비판하고 동료를 험담한다. 
또한 게으른 자들은 일을 만들기만 한다. 그들은 정상적으로 일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게으름을 부리고 부리다가 어쩌다가 나타나서 고작 한다는 것
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격으로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교회에도 이
런 사람이 꼭 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을 규모 없는 사람이라고 불렀
다. 규모 없는 사람은 도무지 일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다(살후 
3:11). 차라리 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했던 가룟 유다처럼 차라리 없는 것
보다도 못한 사람이다.

상식 없는 게으름이 문제

부지런함을 전제하지 않는 게으름은 초대교회의 악한 걸림돌 가운데 하나였
다. 게으름이 비단 초대교회의 걸림돌만은 아니리라. 그것은 전력투구란 열
심을 버린 채 그저 유유자적한 삶을 축복이려니 생각하는 우리에게도 걸림돌
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