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시험을 받으라 (딤전 3:10)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사람
에 대하여 알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물론이고 심
지어는 측근에 있는 사람조차도 그 본심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
하다. 그런데 깊이 숨어있던 본심이 드러날 때면 대부분 관계가 회복되기 어
려운 파경으로 치닫고 만다.
엘리사에게 게하시가 그랬다면, 바울에게는 마가가 그랬다. 게하시만큼 엘리
사 곁에 그리고 마가만큼 바울 곁에 가까이 있던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하지
만 사람은 가까이 있다고 해서 절대로 잘 아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에 가
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헤아리기 어렵다.
내가 여러 곳에서 목회를 하면서 매번 속았던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입술에
는 연방 아멘과 할렐루야를 달고 다니는 사람, 요즘 교회들 가운데 건전한 교
회가 없다고 가슴을 치며 한탄하는 사람,
교우들의 결혼식과 장례식에 빠짐없
이 참석하는 사람, 집을 지으면서 창문을 교회 쪽으로 내서 매일같이 교회를
바라보며 기도한다는 사람, 전화통이 불나도록 인사치레를 잘 하는 사람, 말
끝마다 우리 목사님이 제일이라며 입술에 침이 마르도록 추켜세우는 사람, 교
회가 마치 제 집인 것처럼 들랑거리는 사람, 어느 교회의 좋은 점을 우리 교
회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떠드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거의 늘 속았
다. 교회의 일군을 세우려면 엄격한 시험을 통해서 사람을 가려야 하는 것인
데…
사도 바울이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정말 매서운 지적이다.
사도 바울은 이미 앞에서 집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다섯 가지를 언급했
다(8절-9절). 잠시 후에 가정과 관련하여 한 두 가지 측면을 더 말하게 되겠
지만 (12절), 사실 앞에 제시된 이런 조건들만 만족시켜도 교회의 일군이 되
기에 이미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도 바울은 놀랍게도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조차도
먼저 시험하라고 요구한다. 아마도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
의 일군이 되기 위하여 또 다시 시험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 무척 기
분이 나빠질지 모르겠다.
목회 초년시절부터 나는 매년 말이나 초에 제직수련회를 했다. 집회에 참석
하여 교육을 받으면 끝나는 일이지만, 사정상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
게는 녹음테이프를 들은 후에 간단히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게 했다. 그나마
못하는 사람은 적당한 시간에 교역자들과 함께 녹음을 듣고 열 문항 설문지
에 동그라미나 가위를 표기하는 것으로 교육을 대신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귀찮은 일을 치르게 한 것은 교육내용을 주지시키는 것
이상으로 직분을 사모하는(딤전 3:1) 신앙인격을 확인하려는 데 있었다. 그런
데 언젠가 한번은 어떤 분이 제직수련회를 여는 것에 대하여 발끈 화를 냈
다. 그의 주장은 이미 다년간 교회에서 일을 했는데 무슨 훈련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그는 결국 끝끝내 교육을 받지 않았다.
이미 매사에 단정하고 말에 실수가 없으며 술을 멀리하고 청렴하며 깊은 신
앙을 지닌 사람이 다시 한번 시험을 통과해야 교회의 일군으로 활동할 수 있
다는
사도 바울의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했을까? 게다가 만일에 사도 바
울이 의미하는 시험이 매우 강도가 높은 것이었다면, “먼저 시험을 받으
라”는 말 앞에서 이런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든지 간에 사도 바울의 입장은 너무나 단호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엄격한 입장을 취한 까닭은 한 마디로 말해서 교회에 대한 이
념 때문이었다. 얼마 후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므로
(15절), 사도 바울은 교회의 일군을 정말로 엄선하고 또 엄선해서 세워야 한
다고 믿었던 것이다.
교회의 일군이 되려는 사람은 몇 번이고 시험을 받는다고 해도 전혀 기분
나빠할 것 없다. 오히려 진정한 교회의 일군은 모든 시험을 통과한 후에도 끊
임없이 스스로 훈련하고 스스로 시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