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교수의 목회서신 연구(8)-어긋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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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긋남 (딤전 1:6-7) 

조병수 교수/ 합신(신약신학)

어긋남은 인간의 본성가운데 하나이다. 앞으로 가려하지만 뒤로 가고, 올라
가려고 하지만 내려가는 것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속성의 일부이
다. 오죽하면 사도 바울까지도 고통스럽게 고백했을까. “내가 원하는 바 선
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 7:19). 인
간의 본성 가운데 들어있는 어긋남이란 것은 모든 방패를 뚫는 창과 모든 창
을 막는 방패 사이에 일어나는 모순보다도 더욱 악질적인 것이다. 

이런 악질적인 현상이 디모데가 목회하는 에베소 교회에도 발생하였다. 사
도 바울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제시하였지만 어
떤 사람들은 도리어 이것들로부터 벗어나 헛된 말에 빠졌다 (6절). 언뜻 생각
하기에는 사도 바울이 제시한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
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열광적으로 환영을 받았을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는가. 아니 그랬어야 옳을 것
이다. 사도 바울의 이상 (理想)이 열광적인 환
영을 받았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
러나 문제는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사도 바
울이 제시하는 이상을 외면하고 도리어 헛된 말에 빠졌다. “헛된 말”이란 발
언과 관계된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헛되다”는 단어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 비
신앙적인 생활과 풍습을 나타낸다 (행 14:15; 벧전 1:18). 사도 바울은 “헛
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복종하지 않는 자와 속이는 자에 병행적으로 묘사하
여 질서를 어그러뜨리고 양심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딛 1:10). 
헛된 말을 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
법에 관한 다툼을 일삼았을 것이다 (딛 3:9).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람들
이 사도 바울에게서 제시받은 선명한 고급 이상세계를 버리고 신앙을 갖기 전
의 세속적인 저급 언어세계로 돌아가버리다니.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을 추구
하고 선한 것보다는 악한 것을 선호하는 것을 보면, 군자에게서 도적이 나오
고 개혁을 부르짖는 무리에게서 허위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인간의 어긋남은 부
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본성에는 상위현상이 있다. 

그런데 인간의 어긋남 현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만일에 어긋남을 빚
어내는 사람이 최소한 자신의 문제점을 깨닫기라도 한다면, 그래도 그 사람에
게서는 어떤 희망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좌절하는 것은 불행하
게도 어긋남의 현상을 빚어내는 에베소 사람들에게서 이런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율법의 선생이 되려” (7절) 하였다. 어떤 분야에
서 교사가 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가르침은 깨달음을 전제로 하기 때
문이다. 그래서 어떤 분야에서 가르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깨달은 자가 되
는 것이 우선이다. 이렇게 볼 때 율법을 가르치는 자가 되려면 율법을 깨달
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율법과 관련하여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자신이 무엇에 관하여 확신하고 있는지 깨닫
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율법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참으로 놀랍
게도 에베소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서 이런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
다. 그들은 소원과 현실 
사이의 엄청난 상위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
러냈다.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
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7절). 결국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어지럽히고 진리
를 헷갈리게 하고 말았다. 가르치는 자가 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깨
닫지 못하고 가르치는 자가 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알
지 못하는 사람은 말하지 말며, 깨닫지 못한 사람은 가르치지 말라. 알지 못
하고 말하는 것이나 깨닫지 못하고 가르치는 것은 단지 인간의 불행한 본성가
운데 하나인 어긋남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악질적인 인간의 본성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옛날처럼 지금
도 여전히 교회와 사회에서는 인간의 어긋남이 천연스럽게 반복되고 있기 때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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