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르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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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정승원 합신(조직신학) 교수

바르트의 역사관

바르트의 계시 개념과 더불어 그의 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꼭 알아야 할 것
이 바로 그의 역사 개념이다. 바르트가 ‘역사’라고 할 때는 단지 우리가 갖
고 있는 역사 개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그는 두가지 역사 
개념을 말하기 때문이다. 즉 일반 역사(Historie)와 초-역사(Geschichte)이
다. 이 두 개 다른 독일어는 똑같이 ‘역사’라고 번역이 된다. 그러므로 영어
로 ‘history,’ 한글로 ‘역사’라고 할 때 바르트에게는 어떤 ‘역사’를 의미하
는 지를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일반 역사(Historie)는 보통 달력에서 발생되
는 사건, 즉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역사를 말한다. 보통 역사가나 과학자들
이 탐구하고 분석하는 사건들이다. 그러나 이 일반 역사는 어떤 의미가 결여
된 역사라는 것이다. 반면에 초역사(Geschichte)는 특별한 의미의 역사이다. 
믿음을 위한 의미가 들어있는 사건을 말한다. 과학적 혹은 역사적 관점으로 
이해될 것이 아니라
, 믿음으로 이해되는 것이고, 멀리서 조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초역사의 중요성은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를 망라하여 적용된다고 
한다. 초역사란 하나님이 나타나시며 믿음을 불러 일으키는 순간을 의미한
다. 하나님의 인격 혹은 그리스도와 동일시 되는 구속의 역사가 바로 초역사
인 것이다. 이러한 초역사의 사건은 과학적 관망이 아니라 실존적 결단을 요
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바르트가 역사를 두 종류로 구분하는 데는 신학적으로 혹은 철학적으
로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계시가 역사속에 들어 올 때, 단지 우리가 가
진 일반 역사적 범주에서만 이해할 경우, 그 계시는 초월성을 상실함으로 인
간의 소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가 
일반 역사속에 (전적으로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두워질 수 있기 때문이
다. 사실 바르트에게는 진정한 역사적 의미 혹은 신학적 의미는 초역사에 나
타난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두 역사의 구분을 변증법적 구분이라고 할 수 있
고 또한 칸트적 이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우리가 이미 살펴 본대로 
두 종류의 세계를 추론했다. 본체론적(noumenal) 
세계와 현상적(phenomenal)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바르트의 초역사는 바로 칸트의 본체론적 세계에 속
한 것이요, 일반 역사는 칸트의 현상적 세계에 속한 것이다. 초역사속에 감추
어진 진정한 의미의 계시가 일반 역사 속에 ‘마치 있는 것처럼'(as if) 나타
난다는 것이다. 칸트 철학을 빌려 표현하자면 어떤 ‘실천적 당위성’을 따라 
일반 역사속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진짜 의미
는 초역사속에 발견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알 수 없는 초월성 속에 있다
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두 종류의 역사가 어떻게 바르트의 신학에 적용되는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바르트는 구속 역사를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본다. (물론 바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개념은 우리가 믿는 ‘그리스
도 중심적’ 개념과 다르다. 이것은 나중에 논하도록 하겠다.) 바르트 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로 인한 구속 역사는 일반 역사가 아니라 초역사이다. 그러므
로 바르트는 ‘창조’ 조차 일반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반 역사라 한다
면 초역사인 그리스도안에서의 구속과 
상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 타락 
역시 일반 역사의 사건이 아니라고 한다. 같은 이유다. 일반 역사라하면 그 
타락의 사건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르트
는 창조, 타락, 구속 모든 것을 초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이 말은 곧 이 사건
들은 우리가 아는 식의 역사속에 발생된 사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동정녀 탄생은 일반 역사적 사건이라고 바르트는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
을 들으면 바르트 역시 동정녀 탄생을 우리 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믿고 있다
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바르트는 동시에 동정녀 탄생은 ‘직접적 계시’가 
아니라 주장한다. 그 이유는 동정녀 탄생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
의 성육신 사건과 동일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정녀 탄생은 단지 초역사
적 실재(reality)의 지표(sign)에 불과하다고 한다. 바르트가 동정녀 탄생을 
일반 역사로 보는 것은 그것이 실재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동정녀 탄생을 구속적 의미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부활 역시 동
정녀 탄생과 같이 일반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빈 부덤은 전설적인 것이며 부

의 지표(sign)는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부활의 본 실재(reality)는 초
역사적이라고 한다. 육체적, 일반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부활은 오직 지표 일 
뿐이며, 참 사건(초역사적 사건)의 한 국면에 불과하다고 한다. 참 사건은 오
직 믿음으로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직접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활
은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자, 역사가들이 살피며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초역사로서의 부활은 참으로 일어났고 제자들이 참
으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한다. 이것은 참 사건이기 때문에 달력적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요,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임재요 오늘날 우리에게도 보여지는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