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가 되고 싶다
< 최광희 목사, 행복한교회 >
“예수님께 사랑의 노예 되어 그 뜻대로 살아가길”
아바타는 고대 힌두 신앙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원래 아바타는 산스크리트어인 ‘아바따라’에서 유래한 말로 지상에 강림한 신의 화신을 뜻한다. 그런데 이 단어가 요즘에는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사이버 캐릭터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아바타라는 말이 컴퓨터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5년 리처드 게리엇의 롤플레잉 게임 시리즈 ‘아바타의 임무’부터인데 이후 나오는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주인공 캐릭터를 아바타로 부르는 현상이 보편화되었다.
나아가 90년대부터 각종 채팅 사이트와 포털 사이트들에서 수익사업 차원에서 캐릭터를 치장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사이버 캐릭터를 아바타라고 부르면서 이 단어가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오늘날 젊은 네티즌들은 당연한 듯이 자신의 아바타를 치장하는데 상당한 정성을 들이고 있다.
2009년에 개봉된 영화 ‘아바타’에서는 지구의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나먼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판도라의 독성을 지닌 대기로 인해 자원 획득에 어려움을 겪게 된 인류는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Na’vi)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시켜 원격 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인 ‘아바타’를 만든다.
작년 가을에 MBC TV의 예능프로그램 ‘뜨거운 형제들’에서는 ‘아바타 주식회사’라는 것을 만들어 MC들이 아바타를 통해 미팅을 한다는 설정으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조종자가 모니터를 보면서 전화기를 통해 지시하는 대로 말과 행동을 따라하는 아바타는 조종하는 사람의 분신 노릇을 열심히 하지만 뭔가 어색하고 그래서 시청자들은 즐거워했다. 주로 젊은 층이 많이 보는 이런 TV 프로그램들을 통해 아바타라는 용어는 그 출처와 상관없이 우리 시대에 익숙한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아바타라는 말이 흰두교에서 유래한 종교적인 단어라는 사실은 이제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컴퓨터에 익숙한 이 시대 사람들에게 그저 가상공간의 캐릭터 혹은 어떤 사람의 분신 노릇을 하는 사람을 부르는 단어로 인식되어 있을 뿐이다.
오늘날 정치계에서 누군가의 배후 조종을 받는 사람도 아바타라고 부르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의 한 기사에는 ‘노무현은 김대중의 아바타’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러면서 MB정권은 김영삼 정권의 아바타 노릇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그 기사의 주장이다.
아바타,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는 그런 아바타를 정말로 개발할 수 있다면 제법 사업이 잘 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데 직접 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이나 위험한 작업도 아바타를 통해서 하면 편리할 것이다. 그런데 조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 마음대로 완벽하게 움직여 주어야 제대로 된 아바타일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들도 예수님의 완벽한 아바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나를 위해서 생명을 주시고 대신 죽어주신 그 예수님께 사랑의 노예가 되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삶을 산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신(예수님)의 화신’인 아바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아바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