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갈등에 해결책은 없는가?
김수흥 목사·합신 초빙교수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인가 노사갈등이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어느
곳에서는 갈등이 연중행사로 치러진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는 일 년에 몇 차
례 노사갈등이 일어난다. 자주 일어나는 노사갈등을 TV화면을 통해 시청하
다 보면 자연히 눈살을 찌푸리게 마련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노사갈등
노동자들이 “단결”이라고 쓴 붉은 댕기를 머리에 두르고, 모두 오른 손을
어깨 위로 올려 어깨 밑으로 내려오게 하지 않은 채 위 아래로 올렸다 내렸
다하면서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공산당 집회 같기도 하여 불쾌하기까
지 하다. 차라리 붉은 댕기말고 다른 색으로 바꾸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든
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노동자들이 매장 안을 점거하여 판매 자체를 거부하는 사
례까지 생겼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20여 일이 넘어가는 일까지 생
긴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임직원 일동이 국민을 상대하여 사과 성명까지 내
기에 이르렀다.
사실 노사는 잘못하면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 근로자는 사용자측(사장, 경영
진, 회사)으로부터 임금을 더 받거나 대우를 더 잘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
고, 사용자측은 더 싼 임금으로 노동자를 사용하여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
고 하는 고로 싸움이 일어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노사갈등이 없는 곳도 있는 것을 고려할 때 갈등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최근 TV방송국에서는 노사갈등이 없는 곳의 아름다운 이야
기를 가끔 화면을 통하여 방영해주는 것을 보면 갈등을 방지하는 비결은 사
측이 먼저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로자들은 사측의 양보를 받고
감사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근로자는 회사가 잘 되어야 근로자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또 사측은 노동자가 잘 살아야 일을 잘 해서 회사가 더 잘 된다는 생각을 가
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의 경우 노사화합은 아주 쉬운 것이다. 먼저 사
측에서 양보하는 것은 기본이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조카 롯에게 요단
평야
를 양보했다(창 13:8-9). 양보한 아브라함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았다. 아브
라함은 자기의 조카 롯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
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창 13:9). 양보는 사랑인고로 하나님께서 반드
시 갚아주신다. 양보한 사람이 손해 보는 법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절대
로 없다.
사측의 사람들은 양보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회사 경
영에 있어 최고책임자나 혹은 경영진 중에 무슨 죄가 있는지를 깊이 성찰(省
察)해야 한다. 사측이 폭리를 취하는 것도 죄이고 근로자들을 인격 대우하
지 않는 것도 죄이다(엡 6:9). 또 사측이 회사를 경영하는 중에 불법을 사용
하는 것도 죄이다.
죄가 있는 곳에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다(약 5:4). 죄가 있는지 성찰하여 발
견되면 즉시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 노사갈등을 해결해주시기를 기
도해야 한다. 그러면 갈릴리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은 쉽게 회사를 정상
화시켜 주신다(마 8:23-27).
근로자 측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노동자조합에 참여해서는 안 된
다. 혹시 지금 노동자 조합에 들어 있다면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사측을 향해서 시위를 해서 좀 더 잘 살아보자고 생각하는 것은 부끄러운 생
각이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사람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께 달려 있는 것이다(삼상 2:6-10). 우리의 배는 하나님께서 불려주신다(마
6:33; 요 15:11).
만약 우리가 대우를 더 잘 받기 위해서 세속인들처럼 노동자 파업에 가담한
다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고로 우리는 잘 살지 못할 뿐 아니라 매번 그
런 행동이나 하다가 가난한 채 죽게 마련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살아야 복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향해서 시위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맡겨야 한다(눅 18:1-8).
혹시 사측에 무슨 부정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반드시 언어(言語)로 건의해
야 할 것이다. 만약 건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정에 협력하는 것이다. 그
럴 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것이다. 우
리는 회사나 일반 사회의 부정을 보면 건의해서 고쳐야 한다. 그것이 소금
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마 5:13).
오늘날의 시위는 다분히 회사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분배
를
달성하려고 파괴적인 수단을 쓰는 행위인고로 동참할 수 없다. 우리의 복지
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 고로 하나님께만 매달려야 한다.
인위적 배분 투쟁은 잘못
우리는 세인들처럼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또 애써 하나님
께 기도하여 세상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고 꾸어줄지언정 꾸
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신 28: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