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영성
변세권 목사_온유한교회
이번 주는 제직 세미나가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강사 선정으로 고민을 한
다. 그러던 중 교회 국장회의에서 담임목사 지도도 다 못 받았는데 외부 강
사는 내년에 모시자고 했다. 순간 신선하지도 않은 담임목사 얘기를 들으면
뭐하겠나 하는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한편으론 우쭐한 마음으로 세미나를 시
작했다.
제직회 강사로 결정해줘 마음 흡족해
마침 강의 중간에 쉬고 있는데 보건소에 다니는 박 집사님이 지난주 검사한
나의 피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간이 안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그렇
지… 내가 제대로 폼나게 나가는 게 있었나…’ 그러면서 문득 내가 보이
지 않게 이렇게 저렇게 너무 많은 일들에 신경을 쓰고 있었구나 생각을 했
다.
사람은 누구든지 처음의 마음은 순수하고 겸손하다. 처음 마음에는 때묻지
않은 청순함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처음에 품었던 순수함과
겸손함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처음 마음,
곧 초심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가 야심이 일어나며, 명예욕이 강해지고 허세를 부리
게 된다.
작년에 노회 주관으로 어느 교회 설립 예배가 있었다. 예전에 어쩌다가 노회
장을 한 번 한적이 있었는데 지난번엔 부노회장으로 한 번 더 섬기게 되었
다. 그런데 부노회장이었던 나에게 아무 순서도 맡기지를 않았다. 어색한 분
위기 속에서 참석하고 돌아왔다.
한편 생각해보면 개혁적으로는 이해도 되는 일이지만 그동안의 전통적인 관
점으로 볼 때는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섭섭한 일이었다. 내가 인간
관계를 잘못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서로의 생각의 관점이 달라서인
가?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찌되었든 그 일은
섬김 받고 싶어하고 대접받으려 하는 내 마음의 동기에 겸손함이 없었다는
문제점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엔드류 머레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야 할 근본적이고 진실한 관계
는 잃어버린 겸손의 회복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겸손
의 회복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처음 마음으로 겸손해지기 위해
서는 우선 자신을
낮추기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목회를 하면서도 높아지
고 싶은 생각을 버리고 낮아지려고 마음을 먹으면 심사가 참 편해지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생각만 바꾸면 자존심이 상할 일도 없어지는 것을 느낀
다.
왜 어거스틴이 그의 좌우명을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해야 한다고 했는지
를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톨스토이도 인간은 겸손할수록 더욱 자유로
와진다고 했다. 겸손한 자가 누리는 복을 말해서 더 무엇하겠는가?
우리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이건 주께서 보내시는 자로 가기만 하면 된다.
내가 볼 때 목회는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받는 것과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을 비우니까 교회성장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마음을 비우니까 목사의
자녀가 좋은 학교에 못 가도 성도들에게 창피하지 않았다. 마음을 내려놓으
니까 서운할 것들이 상당부분 줄어들었다. 마음을 비우니까 행복해지기 시작
했다. 마음 비우니까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상처받거나 시험당할 일
이 줄어들었다.
마음 비우니 보고 듣는 게 달라져
우리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아름다운 고백을 하는 사람
들이다. 겸손
함과 순수함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주 비우고 채워야 한다. 우
리 이번 주에는 답답하게 교회에만 있지 말고 합신에서 하는 세미나에 참석
해서라도 우리들의 겸손의 영성을 회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