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실패한 사역자이십니다!_이은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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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실패한 사역자이십니다!

이은상 목사/동락교회

팔순의 실향민 할아버지가 전 재산인 270억원을 ‘사랑의 리퀘스트’ 프로그램
에 흔쾌히 내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식과 갈등도 있었지만 그는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자식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불우이
웃을 위해 거액을 기부했답니다. 물론 이 일이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가슴 뭉
클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 자식이나 친척이나 개인적 입장에서 보면 가슴 
아픈 일일 수 있습니다. 1년에 1억원씩 쓴다고 해도 270년, 자자손손이 돈 걱
정 없이 살 수 있지 않습니까? 특히 돈이 곧 행복이 되는 황금만능주의 사회
에서 본다면 그와 그의 가족은 곧 행복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세
상에 행복을 포기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입니까? 혹 그들에게 어려움이 
온다면 후회하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일이 
학교주변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교수출신인 한 사업가가 시가 200억
원에 이르는 자신의 회사주식과 현금15억원을 모교에 기증했답니다. 그는 평
소에도 나눔의 삶이 소중하다는 점을 가족들에게 강조하며 아이들에게 ‘유산
은 주머니에 남는 게 아니라 머리와 가슴에 남는 것’이라고 가르쳐 왔답니
다. 그러나 그의 자식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이 판단은 성급한 감정적 결정인
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어디 머리와 가슴으로만 살게 됩니까? 아버지가 어려
운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자녀들만큼이라도 돈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일이 없
도록 배려해야하지 않을까요? 유학이라도 보내준다면 훨씬 더 훌륭한 자녀들
이 되지 않을까요?

이런 일이 어디 세상에만 있습니까? 교회에도 있습니다. 액수는 비록 작을지
라도 그 내용은 비슷합니다. 서울의 e교회 청년부는 여름수련회를 강원도 먼 
곳으로 갔습니다. 수련회 이틀째 되는 날 해마다처럼 그 교회 장로님들께서 
수련회 장소까지 그것도 길이 막히는 휴가철에 먼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
셔서 청년들을 후원금과 함께 위로해 주셨습니다. 청년들 입장에서 본다면 흥
분되는 일이지만 그러나 냉
철하게 판단해보면 어리석은 일일지 모릅니다. 정
체된 도로에 뿌린 기름 값, 하루 휴가를 낼 때 손해 되는 직장일, 그 외에도 
가족들을 배려못하는 마음, 청년들 버릇만 나뻐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비난
의 목소리까지… 

이런 일이 성경에도 있습니다. 창13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지면서 땅
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롯에게 줍니다. 이것은 그냥 양보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 당시 목축하는 사람에게 목초지의 선택은 생명과 같습니다. 마
치 장사하는 사람에게 목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개척하는 목사가 개
척지를 잘 고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양보한 날 밤 아마
도 현실적으로 다가올 목양을 걱정했을지도 모릅니다. 좋은 목초지를 놓친 
것, 곧 부를 포기한 아쉬움을 생각한다면 아브람의 양보는 미련한 짓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중요한 것을 포기함으로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일이 있습니
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좋은 것을 놓친 인간적인 아쉬움을 
겪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적 잣대로 판단하면 그것은 정말 어리석
은 일이요 안타까운 일이요 손해
보고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의미에
서, ‘목사가 존경받는 것은 아주 쉬워요. 성도들보다 조금 못살면 되요’라는 
말을 하셨던 故대천덕 신부님도 40년이 되도록 예배당도 크게 확장시키지도 
못하시고 돌아가셨으니 실패자였고, 부목사에게 분리개척멤버를 떼어줘서 작
아진 교회, 청년의 나이에도 큰교회가 별로 없는 개혁을 추구하는 합신교단, 
가난한 성도의 집에 심방 갈 때 용돈을 챙겨 떠나시는 개척교회 목사님, 가난
속에서도 나눔을 실천하는 성도들, 그리고 여우도 아파트가 있고 공중의 나
는 새도 빌라가 있지만 지하단칸방 하나 없는 예수님도 사람의 눈에는 모두 
실패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의 나눔의 실천은 하나님의 약속의 관점에서 보면 미담이며
은혜로운 도전이며 향기로운 예물이며 축복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는 자들의 삶이
기 때문입니다(히11: 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