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어도 고
이은상 목사/ 동락교회
흩어져 있던 가족, 친구와 정담을 나눌 수 있어서 좋은 날, 명절은 온 국민들
에게 알 수 없는 종교적 힘을 발휘하는 기대가 되는 날이기도 하지만 그리스
도인들에게는 갈등의 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종교적으로는 제사문제가,
문화적으로는 오락문제가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사문제는 나름대로 믿음과 지혜로 잘 극복하지만 오락문제는 아직
도 한계를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로 명절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오
락이 바로 화투놀이입니다. 요즈음에는 고스톱으로 대표되는 화투노름이 서민
의 일상에 뿌리를 내리면서 ‘국민오락’이라고 말할 정도로 시간과 장소를 가
리지 않고 서로 죽마고우(죽 때리고 마주앉아 고스톱 치는 친구)가 되어 즐기
고 있습니다.
그 종류도 다양하여 민화투를 기본으로 하여 육백, 삼봉, 나이롱뽕, 섰다, 도
리짓고땡, 특히 화투놀이의 최고봉인 고스톱은 그에 따른 용어도
다양합니
다. 전두환 고스톱, 삼풍고스톱, 설사, 피박, 동시패션, 오광에 흔들고, 못
먹어도 고!
화투는 일제가 식민지 시대의 저항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한국
에 전파시켰다는 부정적 의견이 있는가하면 한편 한국의 사회문화를 연구하
는 학자들은 화투놀이에서 한국인의 서민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고 긍정적이기
도 합니다. 가령 초기에는 민화투가 유행이었는데 요즈음 육백을 거쳐 고스톱
으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속칭 “피”라는 껍질의 신분상승을 보면 더욱 그렇다
는 것입니다.
민화투에서는 아무 의미도 점수도 없어 사랑 받지 못하던 껍질이 서서히 세력
을 갖기 시작해서 고스톱에서는 알짜배기보다 더 많은 힘을 갖게 된 것을 보
면 바로 우리사회의 민중들이 그 세력을 점차적으로 확보했다는 것입니다.
즉 화투의 유행은 우리사회가 신분적 사회에서 시민적 사회로의 변화를 나타
낸다는 것입니다.
고스톱은 차츰 포커놀이로 바뀌기도 하는데 이것은 우리사회가 농업중심사회
에서 상업중심사회로 그리고 자본주의사회로의 변천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
렇다고 이 화투놀이가 건달이나 특수층의
범위를 넘어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후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화투놀이의 문제점은 지난날 심심해서 치는 오락의 정도를 지나 가족간에도
서로를 등쳐먹어야 하는 도박수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화투놀이가 그
리스도인들에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화투판에서 재수, 운수, 남의 실수, 속임
수 등 많은 수작들이 그리스도인의 행실로는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명절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먼저 오락을 소극적,
피동적 자세로 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식구들이 화투놀이를 하자는 의견
을 꺼내기 전에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해서 즐길 수 있는 오락, 운동 등의 프로
그램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제안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자녀들에게 그 동
안 있었던 가족의 일들을 취재하도록 하고 함께 사진도 찍어서 “가족신문”을
만들어 보는 기회로 삼든지 아니면 옛날 사진첩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보
며 가족과 신앙의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한 사회학자는 문화도 사람처럼 탄생을 거쳐 성장하며(유년기-성숙기-노년
기) 그리고 최종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살아 있는 유기
체로 설명합니다. 그렇
다면 한국의 명절 문화는 어느 단계에 있을까요? 아주 먼 옛날에는 샤머니즘
이, 고려시대와 그 이전에는 불교문화가, 조선시대 이후에는 유교문화가, 그
리고 현 시대와 그 이후로는 기독교 문화가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학생의 본분은 컨닝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것이고, 부부의
도리는 간음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고, 신자의 책임은
술 취하지 않는 것 뿐 아니라 성령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는 ‘나는 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고 진리파수만 자랑삼지 말고 기쁨의 종교
인 기독교가 문화에도 맹위를 떨치도록 문화변혁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불
교는 초상집 같고, 유교는 제삿집 같고, 기독교는 잔칫집 같더라’는 말을 믿
지 않는 형제들에게 들을 때까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