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를 달고
< 최광희 목사, 행복한교회 >
“성도들은 이름표 달고 생활하는 사람들”
전도사로 어린이 주일학교를 섬길 때의 일이었다. 여름성경학교를 하는 중에 한 여집사님이 점심식사를 하러 집에 가는데 골목길에서 어떤 남자 분이 자기 가슴을 자세히 쳐다보더라는 것이다.
참 엉큼한 남자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얼른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집에 가서 보니 가슴에 이름표가 달려있었다고 한다. 여름성경학교를 하는 동안 어린이도 교사도 모두 이름표를 달아 주었는데 그 이름표를 단 채 골목길을 지나갔으니 뭐라고 쓰여 있는지 궁금해서 쳐다보았던 것이었다.
어제 용기총에서 주최하는 ‘용인시 복음화 대성회’에 참석했더니 입구에서 목사들에게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이번 성회뿐 아니라 여러 모임에 참석하면 접수처에서 이름표를 달아준다. 그러면 그 행사장에서는 이름표를 달고 다니는데 행사장 밖에서는 이름표를 다는 것이 영 어색하고 이상해서 얼른 이름표부터 떼어버린다.
이름표를 처음으로 단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할 때이다. 그때는 전교생이 다 이름표를 달고 다녔다. 중고등학생 때는 아예 교복에 이름표가 박음질되어 있었다. 학교, 학년, 이름이 새겨져 있어 어디를 가나 신분이 노출되었다. 군에 입대하자 군번과 계급장까지 옷에 달게 되어 있었다. 군인은 어디를 가나 자기 신분을 외부로 알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인이 된 이후에는 행사장 외에서는 이름표를 달지 않는다. 누군가 이름표를 달고 다니면 다른 사람이 궁금해서 자세히 쳐다보게 될 것이다. 사회인 중에는 이름표는 아니지만 자기 신분이나 소속을 나타내는 뱃지를 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회의원은 금뱃지를 달고 대기업에 다니는 분 중에는 회사 뱃지를 단다.
잠언은 하나님의 말씀의 법도를 마음 판에 새기라고 한다. 이것은 명심하라는 뜻도 있지만 가슴 판에 달고 외부로 선포하면서 살라는 뜻도 있다. 만일 우리 성도들 모두에게 이름표를 만들어 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쁜 이름표를 만들어서 거기에 “OO 교회 OOO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성도”라고 새겨서 준다면 성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아마 대부분은 달고 다니겠지만 예배당을 나서면서 가장 먼저 이름표부터 떼어버릴지 모르겠다. 무심코 이름표를 달고 집에까지 가는 분도 간혹 있을 것이다.
일주일 내내 어디서나 달고 생활하라고 명령한다면 얼마나 많은 성도가 순종을 할까? 그리고 그 이름표를 달고 생활할 때 어떤 반응과 변화가 일어날까? 아마도 여러 가지 행동의 제약이 따를 것이다. 많은 것을 절제하거나 포기하게 될 것이다. 어떤 말은 못하고 어떤 곳은 못 가고 어떤 음식은 못 먹고 어떤 것은 못 사게 될 것이다.
우리 교회가 전 성도에게 이름표를 만들어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가 성도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목사도 성도들도 함께 시험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이름표를 달고 다닌다.
성도, 교인, 하나님 자녀,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주일학교 교사, 제자훈련생, 찬양대원 등등 이름표를 달고 이 세상 여러 곳을 누비며 생활하고 있다. 이름표가 없어도 내가 성도인 것을 내가 알고 상대방도 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이름표를 달고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름표를 달면 불편한 것 같지만 내가 성도라고 아예 공개하고 다니면 차라리 홀가분하다.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한때 유행가의 가사처럼 나를 공개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성도로 대우해 줄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든다. “이번 주간에는 어제 받은 이름표를 달고 한번 생활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