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인다
최명선 목사(새빛장로교회)
매스컴은 그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매체다. 그래서 현대
의 기독교의 흐름을 보려면 기독교 신문을 보면 된다. 따라서 개혁신보를 보
면 우리 총회의 흐름과 우리 총회 소속 교회들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신문의 그 방대한 내용 중에서 기도에 대한 내용의 기사가 별로 없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현대의 기독교는 물론이고 우리 총회는(여기서 총회
라고 말하는 것은 여기에 속한 모든 교역자와 교회들을 말함이다) ‘기도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작은 우려가 마음 속에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만나면 누구나 다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서슴지 않고 말하고, 또 그
런 말에 이의 없이 동의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도는 콩쥐의 신세
를 못 면하고 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기도 없이
목회에 성공하는(성공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기 바람)
사례
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리라. 이런 점에서‘기도 없는 성공은 영적인 아편
이다’는 경고가 어느 때보다도 가슴에 와 닿는다.
신학생 때는 누구나 설교를 잘하는 목사가 되려고 그 목표를 정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목사는 우선 설교를 잘하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교에 다
닐 때 어떤 목사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 “목회의 성공 여부는 설교에 달
려있다. 목사가 설교를 잘하면 다른 것이 좀 미흡해도 목회에 70%는 성공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설교를 잘하려고 무척 몸부림을 쳐 왔는데 지금
은 그 때의 그 말을 듣게 된 것을 무지무지하게 후회한다. 그때 그분이 ‘목
사가 기도를 많이 하면 목회에 반드시 성공한다’라고 말해 주었더라면 지금
쯤은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인데…!
레오날드 레이번힐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가 설교하는데 반드
시 신령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억력과 지식, 야심, 개성, 게다가 상당량의 장
서, 자신감, 분별심 등을 잘 조작할 수만 있다면 형제여 오늘 날 어디로 가든
지 강단은 형제의 것이요 이러한 형식의 설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
나님을 움직입니다. 설교는 시간을 움직이지만 기도는 영원
을 움직입니다. 강단은 우리의 재능을 전시하는 진열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러나 기도의 골방은 전시 효과로는 영점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가볍게 여긴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을 최고의 권
위로 여기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무시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예수님은
‘설교하라’고 명령하신 적은 없다. 그러나 ‘기도하라’고 명령을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의 명령과는 전혀 관계없는 곳을 향해서 이상한
확신을 가지고 활기차게 걸어간다.
신학교에 ‘기도’라는 과목이 왜 없는가? 하는 것이 늘 궁금하다. 우리는 모
두 다 단체로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하고 결의를 한 사람들 같
다. 정말 우리가 이래서 되는가? 정말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인가?
우리가 영적(靈的)으로 두 배 늘어 날 수만 있다면 지적(知的)으로는 절반으
로 줄어들어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만나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겨 버렸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그 바울 사도가 버
린 배설물들과 같은 것들을 주어 모으기 위해
서 혈안이 되어 있다. 많은 시간
과 많은 돈을 투자하면서 말이다. 때문에 이런 우리들에게 ‘그리고 예수님
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개혁신보에 기도에 관한 글들이 더 많이 실리기를 바라고 따라서 우리
총회나 신학교가 이 기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예수님의 명령을 전제로 조명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