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은 또 다른 시작”
윤석희 목사(천성교회, 부총회장)
졸업시즌이다. 학교마다 졸업식이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식장에 밀가
루를 덮어씌우고, 까나리 액젓과 마요네즈, 계란과 간장, 심지어 식초와 케첩
까지 등장했다. 교복을 찢고, 바지와 셔츠를 찢는 일은 예사로운 일이 되어버
렸다. 장난치고는 너무 심하다.
아마도 철학적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전문가의 말
대로 가상세계와 현실계를 혼동해서 생긴 일인지는 모르지만 보는 이들의 입
맛이 씁쓸하다. 더군다나 좋은 일과 나쁜 일,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일과 의
식하지 않는 일, 선과 악의 구분점이 없어졌다는 생각까지 든다.
졸업은 졸업일 뿐이다. 모든 것의 끝이 아니다. 어떤 과정을 마친 것에 불과
하고,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것이 졸업이기에, 자기 눈앞에 또 다른 출발점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
을 생각해야 한다. 사려 깊은 사람이 될 때
무모하고 난폭에 가까운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신학교 졸업은 사회와 사뭇 다르다. 소명의식과 사명감에 불타는 하나님의 사
람들이 졸업과 함께 3년 혹은 7년 동안 연마한 실력을 가지고 목회 현장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나름대
로 할 말이 있고, 주관이 있겠지만 돈벌이가 많은 곳으로 가는 형편이고 보
면 사명감과 소명 의식은 옛말처럼 느껴진다.
‘교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신성한 생각이 구시대 사람들에겐 있었다. ‘밥먹
고 살 곳은 오직 교회뿐이라’고 생각했던 미련한 시대의 사람들도 있었다. 넓
은 의미에서 직업관이 일찍 목회쪽으로 굳어져 버린 시대도 있었다. 그것이
소명감인지, 사명감인지는 하나님만이 평가하실 일이지만 나는 그런 시대에
목사님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런 시대의 사람이다.
부름받은 것에 대한 자부심보다 자기 집과 교회의 거리를 따져보거나 다른 직
장과 교회의 대우를 비교해 보기도 한다. 더 나은 일자리를 제공하면 학원이
든, 과외든, 아니면 아내가 벌든 그것을 추구하기도 한다. 굉장히 실리적이
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의 짐을 덜어주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교회
를 그런 사람들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목회는 돈 좀 벌어 놓고 하거나 이 다음에 여유 있을 때 하는 것으로 생각하
는 모양이다. 심지어 ‘이것 저것 해보다가 다 안되면 목회하지 뭐?’라는 말
도 들어 보았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흉내라도 내
는 모양이다. 자기도 ‘수퍼 목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목사 중 99%는 수
퍼 목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그렇게 한가롭고 여유 있게 섬길 수 있
는 단체의 일이 아니다. 자기는 그렇게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모
르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으실 것이고 교회는 수용하지 않는다.
가난하게 살아도 좋다는 사람들이 신학교를 지원해야 한다. 많은 사람을 모으
지 못해도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졸업해야 한다. 신학교 지망생
들이 점점 줄어드는 일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서글픈 일만은 아니다. 참 사명
자와 소명자가 들어오면 되는 것이다.
올해도 신학교를 졸업하는 이들을 축하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다
. 선배가 잘하는 것도 배우고, 못하는 실패의 원인
도 배우라. 졸업은 졸업으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정암은 ‘죽기까
지 공부하라’고 했다.
어디 책보는 것만 공부겠는가? 하나님과 인간, 세상과 교회를 열심히 공부하
라. 죽기까지 배우면 실패가 적을 것이다. 아니 승리만 있을 것이다. 졸업은
졸업이 아니라 또 다른 공부를 해야 하는 시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