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_나종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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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나종천 목사/ 한사랑교회 

대동 수양관에서 가족수련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수양관을 관리하던 집사
님께서 이미 소천하신 목사님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다. ‘목사는 집을 3일간 
비워도 도둑 맞을 걱정이 없어야 된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시대가 많이 달라
졌지만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많이 가지고 있고, 많은 것을 부요하게 누리
고 있지 않는가? 또 외적인 여러 가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집과 내 마
음을 여러 개의 자물쇠 통으로 꼭 잠가놓았다. 그런 나에게 주님은 찾아오셔
서 수없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지만 그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서 열지 않고 
있는 나의 추한 모습을 보았다.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혼자 하는 일인데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 단 한 번
만 무릎을 꿇고, 계속해서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다. 딱 한 번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그 대가로 상상을 초월하는 이득이 주어진다면 이처럼 매혹적인 유
혹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 얼마나 
있겠는가? 비밀이 보장되고 성공만 한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만연된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혹 비밀이 새
어 나간다고 해도 대수로운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미 모든 난관은 사라
졌고, 부귀와 권세를 누리고 있지 아니하냐, 그까짓 절 한번 했다고 고개가 
삐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신 후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 분만을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만’이 첨가된다. 경배를 받고 섬
김을 받을 대상은 오직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존재도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사단과 하나님,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가 과제로 주어진다. 사단에
게 절하는 것은 사단이 매력적이어서가 아니라 사단이 줄 수 있는 천하만국
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의 천하만국은 ‘세상의 모든 나라들'(pasas 
tas basileias tou kosmou)로 되어있다. 

여기에서 나라는 ‘통치’ 또는 ‘지배’를 뜻한다. 이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
을 다스릴 수 있는 수단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져야할 바
른 관계를 저버리게 하고 왜곡된 관계를 갖게 
하며 인간의 상호평등 관계를 
포기케 하려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어서도 안되고, 반대
로 다른 사람의 무릎을 자기에게 꿇리게 해서도 안 된다. 배운 사람이 배우
지 못한 사람을, 큰 교회가 작은 교회를,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그 어
떤 매개물도 높낮이를 나누거나 구분해서 상호평등관계를 깨서는 안 된다.
사람이 한가할 때 주로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가 밝혀진다. 틈만 있으면 땅을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땅이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교회당 건축이, 어떤 경우에는 명예가, 
또는 대 저택이나 초대형 교회 건물이 한 사람의 잠정적인 하나님이 될 것이
다. 품목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그러나 그 어떤 품목도, 그것이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경배받아야 할 하나님을 대치할 수 없다. 

“권력은 그것 앞에 무릎을 꿇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
와 벌」에 나오는 구절이다.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권력뿐 아니라 재산도 그
렇고, 부귀 영화도 그렇다. 그것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주어지게 되어있다. 
사람들이 그것들을 집착
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
의 무릎을 꿇게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쳔
은 그럴 수 없다. 우리가 무릎을 꿇어 경배해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 
만 있을 뿐이다. 

아직도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벨기에의 다미안 신부에게서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평생 나병 환자와 함
께 보내기로 작정한 다미안 신부는 나병 환자들이 집단으로 수용되어 있는 몰
로카이 섬에 가서 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환자인 그들이 
환자가 아닌 자신을 그들과는 운명이 다른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이 신
부는 그들과 심정적으로 교류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그래서 그 신부는 자신도 그들의 고통을, 머리로가 아니라 실제로 체험하기 
위해 직접 자신이 나병 환자가 되기를 날마다 주께 기도했다. “제발 나병에 
걸리게 해주십시오.” 그러던 중 몇 년만에 결국 그 자신이 나병에 걸리게 되
었다. 그 신부는 자신이 나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자마자 이렇게 외쳤
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
니다. 이제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고통이 내 고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영
광을 돌립니다.” 그는 진심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오늘 우리들의 감사는 무엇 때문에 올리는 감사인가? 신분의 상승, 땅의 구
입, 교회당 건축, 주택 구입 때문인가? 아니면 한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다미안 신부의 마음이 있기에 감사하고 있는가? 아니라면 우리는 하
나님 외에 어떤 매개물을 경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라기는, 천하만국, 부
귀영화가 주는 권력에 매료되어,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싶은 유혹, 혹
은 다른 사람들의 무릎을 꿇리게 하고 싶은 유혹의 순간이 올 때마다, “사탄
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으로 올 
여름에는 우리의 심정을 다스리고, 맑은 신앙을 유지해 나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사실 천하만국이 주는 힘의 매력은 물거품처럼 사라지나, 하나님
의 말씀은 영원하다. “다만 하나님만 섬기라.” 섬김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이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