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것을 멀리서 찾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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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형 목사(산성교회)
바른 것을 멀리서 찾지 말자

근세기에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글을 통하여 많은 도전을 받
았다. 한창 청년기에 있던 본인에게도 그 글은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이러
한 시대에 영적으로 우리는 어떤 준비가 되어야 한느가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한 경제사회학자의 미래 예견의 차원이 아닌 현상적
인 차원에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
퓨터의 발전과 인터넷의 사용, 사상적 갈등의 침잠 등은 이제 전 세계적으
로 어떤 중심축이 움직이고 있는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세계적이지도 못하고 역사적이지도 못한 우리 개혁교단의 내일
도 불확실의 여정을 가고 있지 않는가 하여 못내 아쉬움이 있다.
학교를 위하여 본의 아니게 교단형성이 되었다고 하여 스스로 된 분리
주의자는 아니라고 자부하는 개혁교단이 아직까지도 그러한 피상적인 의식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면서 항상 남들이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
고 
있다면 이것은 큰 수치이다.
기왕에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교단이라면 우리는 그 의미를 굳게 세
워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을 주장하고 있다. 이 말을 좀더 보
편성을 띤 일반적인 용어로 표현한다면 창조적신학, 사회적교회, 도덕적생
활로 표현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잇는 개혁주의란 방향성
위에서 말이다.
바른신학이 우리의 특징 아닌가? 사실 타 교단에서 교수하는 합신 출신
교수들 중 여럿이 그 교단의 신학적 중심 인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런데 본 교단에서는 모든 목사들이 같은 신학을 하여서 교수 수준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신학교에 대한 기대가 예전 같지 못한 것이 사실이
다. 사견임을 전제한다면 그것은 신학의 목회적 적용의 문제에 있다고 보
겠다. 이것은 실천신학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말씀선포에 대한 자신감
도 잃고 있는 것이다.
잡다하게 흩어져 있는 한국 교회의 성장 신드롬 속에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신학적 기반도 느슨해져 버린 탓은 아니겠는가? 주위의 눈치 보지 않
고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창조적인 
목회는 말씀선포
에 살아있는 것이다.
바른교회론에 있어서도 양상은 마찬가지이다. 우리 교단에 큰 교회가
없단다.
그것이 말이 되는가? 큰 교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을 분명히 하면 어
느 교회를 모델로 삼아야 하는지 즉, 바르게 성장하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교단 중 하나인 우리 교단에 그 형태는 왜 그렇게 다양하
고 또, 그 교회의 성장 과정이 어떻든지 교세가 웬만하면 대접받는 상황이
라면 ‘바른교회는 무엇인가?’를 외치는 후배들에게 무엇을 예로 들어야
할지 … 난감하다. 사회 속의 교회로 서 가야 할 것이다.
바른생활에 들어가면 더 더욱 곤란하다. 무엇이 바르단 말인가?
영적 재충전을 위하여 귀중히 사용될 수 잇는 기존 기도원은 매각한단
다. 교회 밖의 유일한 사회시설인 예가원은 어떻게 세워 나아갈까? 목사가
보여주는 의와 평강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구제기관의 목사는 천사
요 지교회의 목사는 할 일 안하는 사람(?) … 우리의 교회와 목회자인 우
리 자신은 도덕적이고 영적으로 세상에 비쳐지고 있는가?
현대그룹은 제 살기도 바쁘면
서도 전 세계가 깜짝 놀랄 계획들을 자꾸
내어놓는다. 우리 개혁교단의 장 단기 계획들은 정책위원회에서 착실히 준
비해서 발표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위원들 본인들의 생각뿐 아니라 분과위
를 두어서 차세대 일꾼들의 비젼을 활용하여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 목회자 개개인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본연의 임무
가 무엇인지를 다시 살피며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세워져 나아가야 할 것
이다. 특히 겔3:7-11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에 우
리 선포의 중심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의 자녀들과 제자
들은 ‘확실합니다’를 고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족을 단다면 우리 개혁교단이 그렇게 못하진 않다. 참으로 많은 사람
들이 부러워하는 교단이다. 단지 좀더 확실하자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해외여행을 비롯하여 세미나 등 목사의 식견과 안목을 넓히는 훈련은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통하여 무엇을 이루어 나아가
려는지 … 목적과 열매의 불일치가 많이 보이는 듯하여서 못내 아쉽다.
바른 것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가지고 있고 또, 이미 공감하고 있

n다.
현 사회를 직시하는 안목을 우리에게 주었고 그 길 된 말씀과 그 해석
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 자신의 모습이 영악하기만 하고 미숙한 것을
싫어 버림으로 우리의 개혁이 신뢰성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겔3:9의 말씀 같이 우리의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여 시
대를 두려워 말고 선포하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바른신앙 고백과
여호와의 말씀에 있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일하다고 생각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