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혹은 개혁신앙에 대한 오해
작금 한국교회는 두 가지 양상으로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처럼 보인다. 곧 지성적으로 되어 가거나 반대로 감성적으로 되어가는 현상이 그것이다.
그런데 전자는 소위 개혁주의 혹은 개혁신앙을 대변하는 것처럼, 후자는 소위 기복주의 혹은 기복신앙을 대변하는 것처럼 회자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누구나 후자의 흐름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나타낸다.
대다수 교인들은 자신을 개혁주의 혹은 개혁신앙을 추구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종종 사람들은 개혁주의와 기복주의의 변별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 결과 나타난 현상이 바로 개혁주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오해에서 비롯된 비난 중 하나가 개혁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책임을 애써 외면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 나머지 방종적인 생활로 자신을 내모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사실 개혁주의자들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을 우리의 기치로 들고 있는 우리들은 이러한 비난 앞에서 좀 더 의연하게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정한 개혁신앙인이라면 결코 자신을 방임한 상태에 내버려두거나 성도의 거룩한 삶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의 견인교리는 선택과 은혜를 말하며 성도의 책임을 결코 간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은 결코 성도의 견인 교리를 남용하지 않는다. 만약 자신이 선택을 받았노라 하면서 성도의 거룩한 삶을 의도적으로 방임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오히려 결코 선택받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선택받은 하나님 백성의 마음에는 필연적으로 거룩한 삶을 향한 경건한 열망이 솟구치기 마련이다. 단지 그 정도에서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경건을 향한 거룩한 열망이 결여된 사람이라면, 그가 제아무리 개혁신학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교리적 치밀함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거짓과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바리새적인 독선과 정죄의 쓴 열매만 맺게 될 것이다.
참된 성도는 구원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을 향한 거룩의 열망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늘 빚진 자의 심정으로 연약한 자를 향한 섬김과 배려,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