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교육은 기독교세계관 교육부터
주일학교에 출석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바라보면 늘 부담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사회와 교육 환경이 많이 바뀐 상태이지만 교회는 늘 비슷한 모습으로 그들을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와 이 시대의 청소년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이 시대 문화와 정신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것을 이 시대의 세계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문화와 정신을 지배하는 세계관을 올바르게 파악한 후에야 기독교세계관의 관점으로 비판하며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미흡하다면 이 세상의 세계관에 젖어 살아가게 되는 이중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된다. 나아가 기독교세계관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 되므로 교회 청소년들에게는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아주 포괄적인 가르침을 주지만, 우리들의 목회 현장은 매우 좁은 소견으로 쌓여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기독교세계관에 근거한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가르칠 때 교회 청소년들이 큰 소원을 품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그것은 목회현장에서 적극적인 기독교세계관 교육을 준비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 이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도록 교육할 수 있다면, 머지않아 다시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기관으로 존중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목적을 위하여서도 청소년들에게 기독교세계관 교육을 위하여 집중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기독교세계관 교육을 위하여, 현재 한국교회에서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는 기관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좀 더 실천 가능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목회자들 역시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져야 한다.
우리들이 흔히 문화사명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문화사명을 위한 실천교육 내지 훈련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목회 현장이 계속 청소년이 아닌 장년 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앞으로도 교회는 청소년들이 점점 더 줄어들고 노년과 장년의 성도들만 남는 현상이 될까 염려스럽다.
개혁주의를 변함없이 외치며 나아가는 우리 교단의 정체성을 위해서라도 청소년을 위한 기독교세계관 교육은 이제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