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에도 예수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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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에도 예수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1월 3일은 총회 신년 하례회가 있었다. 이날 문상득 총회장은 “친구”라
는 제목으로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주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이 총회
를 위해 일하는 분들을 서로에게 “친구로 붙여주셨다”고 하였다. 이렇게 
친구의 마음을 가지고 힘을 합하여 일한다면 큰 역사가 일어날 것으로 믿어
진다.
어떻게 일하였는지는 훗날에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알게 모르게 
총대들의 리더십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합동교단은 총회 임원들
의 리더십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제1기(44-55회)는 1959-1971년까지로서 “신학형 교권”이라고 부른다. 이때
는 WCC 에큐메니칼 운동 가담 여부로 통합측과 분열하였다. 교권의 주된 관
심은 박형용 박사의 보수정통신학을 지키는 것이었다. 
제2기(56-69회)는 1971-1984년까지로서 “정치형 교권”이라 부르는데 열악
한 캠퍼스 환경의 개선을 촉구한 신학생들의 시위가 교단 분열까지 이르게 
하였다. 

3기(70-91회)는 1985-2006년까지는 특징이 없었다. 오히려 리더십의 부재
로 혼란을 야기한 결과 금권선거가 만연하였고 제비뽑기 선거라는 특유의 방
법이 생겼다. 
제4기(92회)는 2007년 이후로서 종전의 대결과 분쟁을 탈피하고 “화합과 일
치”의 교권을 만들어 냈다. 문제 사안조차도 과거의 잘못을 질타하기보다 
내일의 개선책을 모색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리더십이 성숙한 총회를 가능
케 했다고 칭찬하고 있다.

총회 지도자들의 영향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우리 총회도 교단의 역사
를 연구하는 분들이 어떻게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하기는 사람들의 평가
보다도 총회를 이끄는 분들은 최선을 다하여 현안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
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총회의 현안 문제로는 헌법 수정을 완성시켜야 하며, 농어촌과 미 자립
교회들의 자립, 부서가 재정적으로 일하기 힘든 문제, 신학교 직영문제, 개
혁신보사 재정문제, 은목관 건립 등을 들 수 있다. 진정한 지도자는 난제를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히 맞서 끈질기게 해결을 시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적인 성과형 리더십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
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차원 높은 리더십을 이어 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첫째 관계형 리더십 유형에 속한다. 관계형 리더는 조직 내 인간
적 관계를 중요시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최대한 경청하며 우호적 분위기
를 만드는 데 노력한다. 개개인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12명의 제자 공동체를 잘 이끌 수가 있으셨다. 가룟 유다
에게까지도 마지막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제자들에
게 말씀하시기를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셨다(마 18: 
6).

그와는 반대되는 성과형 리더십은 다른 모든 것보다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목표 달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
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성과를 달성하려고 한다. 이들은 대체로 일방적인 
경향이 강하다. 조직원을 함께 목표 달성에 매진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것
이다. 이런 리더십이 신앙 공동체 안에 사용될 때는 목표는 이루겠지만 시험
에 드는 사람이 
많이 생겨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관계형 리더십과 더불어 둘째로 희생적인 리더십을 사용하셨
다. 주님은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
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
건으로 씻겨 주셨다. 더욱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
어주신 것이다. 결국 그 사랑에 감격하여 스스로 주님을 따르게 되는 것이
다. 이런 리더십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지혜로운 리더십이다. 

총회에 관련된 분들은 예수님의 리더십을 사용하여 총회를 이끌도록 부름 받
은 것이다. 바라기는 관계를 중시여기며 희생적 헌신으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여 총회가 크게 성숙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