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公과 사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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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公과 사私

‘공과 사를 구별하라.’
식견있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주는 가르침이었고, 교장 선생님이 졸업식장에
서 하는 마지막 훈시였다. 자신이 공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산다는 것도 
어렵거니와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구분하며 산다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공인이 되어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구분만 잘해도 사람들에게 존
경의 대상이 되는 법이다.

2006년 12월 30일자 조선일보에 고 최규하 전 대통령에 대한 기사가 실렸
다. 서교동에 있는 자택 응접실에 1953년산 일제 ‘나쇼날 선풍기’와 생산
연도를 짐작하기 힘든 ‘석유난로’가 있고 보일러실에는 ‘연탄난로’가 있
었다. 흰 고무신도 있었고, 30년된 라디오와 재활용해서 쓴 플라스틱 이쑤시
개도 있었다. 

이 집은 1973년부터 33년 살았던 자택이었다. 연탄보일러를 사용한 이유에 
대하여 1979년 오일파동 때 강원도 장성 탄광의 광부들을 보고 ‘나만이라
도 끝까지 연탄을 때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국무총리 시절 사돈을 교육
감 후보에서 탈락시켰고, 친누나가 국무총리 담
당의사에게 치료받기를 원했지만 ‘그런 규정은 없다’며 거절했다. 이 글
을 쓴 기자가 ‘공을 위해 사를 죽인 마지막 선비 대통령이었다’라고 회고
했다. 

공공기관은 문자 그대로 공공기관으로 국민 전체나 단체의 유익을 위해 만들
어진 기관이다. 사설기관은 공공기관과는 달리 은사가 많은 사람이 공공의 
유익보다는 개인적인 유익을 위하여 운영하는 기관일 것이다.

우리들이 믿고 따르는 기관 중에 공공기관의 성격을 가진 곳이 교회이다. 교
회는 지교회뿐만 아니라 노회와 총회를 포함한다. 공공기관의 아름다운 운영
을 위하여 당회나 공동의회, 노회나 총회가 모여서 결의를 하는 것이다.

그런 결의는 개인적인 생각이나 개교회의 운영 방침보다 항상 그런 것은 아
니겠지만 위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노회와 총회의 결정은 
신중해야 하고 결의한 것은 지교회나 성도들이 다 같이 힘써 지켜야 한다. 
사설기관의 지침보다 공공기관의 지침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힘써 행해
야 된다. 

사설기관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습성을 가지기 때문에 회의가 적
고 독단적
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물론 이사회나 운영을 위한 운영회가 있을 수 있
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성격보다는 아무래도 주관적이거나 독단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법이다.

우리 주변의 교회들만 보아도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도 하고 교육도 한다. 다
만 공공기관이라고 하는 성격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지교회마
다 프로그램이 많고, 선교도 하고, 교회 신문도 발간하며, 나름대로 교육을 
한다. 이런 것들을 힘써 행하다보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성격의 공적인 일
을 등한히 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문제가 있게 된다. 

초대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양성은 인정하면서도 사도들의 가르침
을 받아 예배하고 교제하며 기도하고 전도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표준이 사
라지는 사사시대와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교단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느낌
을 받는다. 교회마다 프로그램이 다르고 예배 형태가 다르다. 오히려 다양하
다 못해 괴리감마저 느낄 때가 많다. 물론 은사의 다양성은 인정하지만 반면
에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너무나 아쉽다 못해 서운할 정도다.

공공기관의 장(공인 중의 공인)이 
된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총회장이나 총
회 상비부 부장이나 특별위원회 위원장이나 기관장들은 항상 사적인 감정이
나 사적인 말과 행동은 삼가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다. 

최근 텔레비전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연개소문’이나 ‘대조영’ 또는 
‘주몽’을 보면 그들은 참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과 영토를 다같이 귀하
게 여겨 목숨걸고 싸우는 장수들이었다. 당대의 다른 왕들은 그렇지 못했
다. 주변에 있는 욕살들이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연개소문이나 대조영, 주
몽은 달랐다.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헌신한 사람
들로 묘사된다. 

대통령이 국가의 일을 맡고도 개인적인 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교회
를 맡은 목회자가 개인적인 영리를 위하여 교회 운영을 한다면 더욱 큰 일
일 것이다. 우리 교단에 속한 임원회부터 모든 부서들이나 기관들 역시 마찬
가지이다. 개인적인 사설기관이 아니다. 800여 교회를 염두에 두고 일하는 
기관이고, 전 세계와 하나님 나라 전체의 유익을 생각하고 일하는 기관들이
기 때문이다.

21세기라고 말하는 현시대는 과학 문명의 최첨단을 자랑하지만 여전히 
유효
한 가르침은 ‘공과 사를 구별하는 사람이 되라’이다. 어떤 단체의 장이 되
어서 예하 직원이나 괴롭히고 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에게 존경받지 
못한다면 혹 그가 충성되게 일을 한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덜된 
사람이라고 평가절하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공인으로서 공과 사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없다면 차라리 공적인 일을 맡지 않는 것이 낫지 않
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