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경시풍조를 경계한다
성주진 교수_합신
작금의 신학경시풍조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심각하다. 신학이 교회성장과 연
합운동에 장애가 된다는 피상적인 판단 아래 무언가 이룰 수만 있다면 신학
적 근거와 건전성을 따지지 않는 ‘뭇지 마’ 풍조가 득세하고 있다. 나아가
서 엄정한 검증이 없이 목회현장의 어려움이나 교단분립의 문제를 마치 신
학 자체가 야기한 것처럼 매도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현안의 신학적 측면
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으로 몰리기도 한다.
이러한 신학 경시 풍조는 역사적으로 신학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다. 서구교
회에서 신학에 대한 불신풍조는 자유주의의 폐해와 관련이 있다. 한국교회
도 성경과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종류의 신학에 노출되
어 있다. 정통교리를 교권 다툼과 분리의 명분을 축적하는 방편으로 오용하
는 사례 때문에 상처를 입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신학은 살리는 것이 아
니라 죽이는 것으로, 복음이 아니라 ‘율법’으로
잘못 인식되었다. 이에 따
라 신학의 역할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신학을 경시하는 경향이 자리 잡
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경시는 빈대를 잡자고 초가를 태우는 것과 같다. 신
학이 오용된다면 바른 사용을 추구해야지, 신학 자체를 버릴 수는 없는 일이
다. 나쁜 신학 때문에 입은 상처는 좋은 신학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 나쁜
신학을 방치하는 것은 신앙적 상처를 악화시키는 일이며, 좋은 신학을 소중
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치료의 기회와 건강의 축복을 저버리는 일이다. 따라
서 신학을 경시하는 것은 사실상 나쁜 신학의 피해를 확산시키는 일이다.
한국교회는 신학경시가 초래한 신학부재로 말미암아 진리의 빈곤을 경험하
고 있다. 교리에 대한 조직적, 전체적인 이해의 부족 때문에 성경의 오용이
지속되고 있다. 이단에 대한 분별력의 저하로 건강한 교회성장이 방해받고
있다. 신학의 견고한 뼈대가 없기 때문에 세상풍조에 쉽게 흔들린다. 절대적
인 진리를 부인하고 상대주의와 혼합주의를 쉽게 용인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바른 신학뿐이다. 이 일을 대신해줄 대체수단이 없다. 빈약
한 진리
를 정서의 고양이나 실천의지의 과잉으로 대신할 수도 없다.
지금은 신학의 중요성과 유용성을 다시 일깨워야 할 때이다. 신학은 근본적
으로 복음의 이해와 제시와 변증을 돕는다. 신학적 교리는 신앙의 뼈대이자
설교의 자양분으로서 진리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분별력을 키워준다. 믿
음의 정도를 벗어나 곁길로 가지 않도록 돕는다. 따라서 신학은 결코 목회
의 적군이 아니라 목회의 가장 큰 우군이다.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우군을
멀리하고 적군을 끌어들이면서 승리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목회에서 신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장식이 아니라 골격이요, 주변이
아니라 중심이다. 복음의 총체적 요약이자 진리의 보고로서의 바른 신학은
소중한 신앙고백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진리의 송영이다. 이러한 신
학은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최상의 목회 원리이다. 이런 점에서 신학
없는 목회는 목회가 아니며, 신학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사실 신학이
없는 개인, 신학이 없는 교회는 없다. 신학을 무시하는 나름의 ‘신학’이
있을 뿐이다.
신학경시풍조를 극복하고 신학을 선용할 수 있는 길은 없
는가?
먼저, 성경의 예를 따라서 신학을 이해해야 한다. 바울이 좋은 예이다. 바울
에게 있어서 신학과 목회는 분리되지 않는다. 목회는 곧 신학이요, 신학은
곧 목회이다. 이것은 역사적 개혁주의의 일관된 입장이기도 하다. 교리는 교
회의 진정한 부흥과 발전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목회는 바른 신학 위에 기초
해야 한다. 현대 목회의 살 길, 현대 설교의 돌파구도 건전한 신학을 회복하
는 데 있다.
다음은 교회사의 예를 따라 신학의 전승과 발전에 힘써야 한다. 현대 교회
가 신세를 지고 있는 신학적 유산을 생각해 보자. 종교개혁까지 가지 않더라
도 찰스 하지 같은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드 같은 복음전도자, 제임스 보이
스 같은 설교가, 박윤선 같은 성경주석가 등에게 소중한 신학적 유산을 빚지
고 있다. 우리도 다음 세대에게 이러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도록 진
리의 일꾼들을 키우고 귀히 여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단적으로는 개혁주의 신학의 유산을 소중히 여기고 더욱 발전
시켜야 한다. 우리 교단은 바른 신학을 표방한다. 바른 신학 위에 세워진 바
른 교회의 기초 위에서 바른 생활을 추구한다. 이것은 교
단과 신학교가 이어
받은 소중한 신학적 유산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신학을 쉽게 폄하할 것이 아
니라 그 깊이와 부요함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다함께 이러한 신학
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에 따라 교회와 신학교
는 개혁신학의 기초 위에 든든히 서서 영혼을 살리는 신학의 형성과 발전에
더욱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