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과제와 그 대책
김용주 목사_소식교회
지금부터 25년 전 우리 교단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의 공식 명칭은 “대한예
수교장로회(개혁)”이었다. 우리는 이 명칭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도 갖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상당한 부담도 안고 있었다. 그후에 언제부터인가 “개
혁”이라는 말에 알레르기적인 반응이 나타나면서 표면적으로는 이 명칭을
쓰는 교단들이 더러 있다는 이유로 “합신”으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
다.
물론 “장로교회”라는 말이 곧 “개혁교회”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
리는 신학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가운데 장로교회라는 명칭에 안주
해 왔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 사회 과정에서도 “평생교육”이
라는 슬로건 아래 부단히 배우려 하고 있는 현실인데도 우리는 소시적에 신
학교에서 배웠던 사실에만 안주해 왔었음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이에
우리 교단의 당면 과제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살펴보지 않을 수 없
다.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 교단 안에 신학적 통일성이 확립되어 있는가 확인해
야 한다. 우리는 지금 “기이한 각개 전투현장”에 나아와 있는 것과 같다.
어떤 정신으로 무장이 되어 있는지, 고지를 점령하고 나서 그곳에 세워야
할 깃발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
어 적군인지 아군인지도 분별이 안 되는 상황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기이한 내용과 현상은 신학통일의 부재에서 기인된 것이 분명하다.
그 다음 문제는 우리 신학(혹은 신앙)의 전달 방식이나 전개 방식에서 문제
점들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를 지도하는 분들이 자기 나름대로
“목회 원리”가 설정되어 있는 “기이한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그것만
이 아니다. 그저 아무데나 빌붙어서 여러 방식을 끌어들여 오고 있는 경우
도 종종 확인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성경을 교육하고 설교하는 것만
이 아니다. 마땅히 교회가 따르는 예배모범, 권징조례, 교회정치 그리고 교
회 회의 방식에서도 여전히 세속적 방식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
되고 있다.
우리 교단의 당면 과제가 분명한 만큼 그 대책도 분명하다. 그 대
책이란 주
님 자신이 이미 우리에게 명하신 것들이고 이미 우리 주께서 선물의 방식으
로 주셨던 것이며, 이미 우리가 우리 주님에게서 받은 것들이다.
첫째,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우리 모두가 고백하고 맹세하며 선서한 대로 목
회해야 한다. 아무리 주변을 돌아보고 일생동안 찾아보아도 그것들은 헛될
뿐이다.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심 같이 가장 건실
하고 아름다운 내용들이 매우 실제적으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우리 각자가
마음을 기울이고 손을 내밀면 그냥 만질 수 있는 위치에 우리에게 주신 “보
화”가 풍부하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둘째, 우리의 신앙(신학)을 전개하고 전달하는 방식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서 명하신 제도와 제시하신 그 규례대로만 따라가야 한다. 우리의 눈에 재미
없어 보이고 우리의 성격 때문에 잘 될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개혁신앙의 내용들을 이미 충분히 받았다. 우리는 이 개혁신앙을 전
해야 될 자들로 부름을 받았고 그 일들에 쓰임 받는 도구요 그릇이라고 믿
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혁신앙의 내용과 방식이 제시하는 그 길을 고집
하여 가야 하는 것이다.
셋째, 이제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내실 열매들이 하나님께만 영
광이 되도록 힘을 다하여 수고하여야 한다. 이 일을 위하여 말씀을 열어 연
구하고 이 일을 위하여 부단히 기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주께서 우리 모두에
게 선물로 주신 열매들로 인하여 주께 감사하며 주를 기뻐해야 한다.
이 아름다운 일을 위하여 먼저 우리 교직자들 모두가 본래 선서했던 그 내용
과 그 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최소한 개혁 신학적 통일로 되돌아가
야 한다. 그리고 주께서 은혜를 주시는 대로 가장 엄선된 개혁자들의 정신
을 따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참으로 알아모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주께
서 친히 내신 제도와 규례를 따라가는 데 우리 목회의 최후 승부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이 일에 일치하여 주께서 연합하게 하신 대로 주시는 힘을 모아
서 모든 교직자와 성도들이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