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화’ 외침에 속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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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화’ 외침에 속지 말아야

송영찬 국장

요즘 우리 시대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처럼 보인다. 21세기가 
밝아오면 희망찬 미래가 펼쳐질 것처럼 소망했지만 역사의 흐름은 우리들의 
소망을 외면한 것처럼 보인다. 21세기 벽두에 벌어진 9.11 사태와 아프가니
스탄 전쟁,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이라크 전쟁은 이 시대가 결코 평온한 
시대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의 패권주의가 빚어낸 결과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20세
기 말에 몰락한 이데올로기 시대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이슬람 문화권과 반 
이슬람 문화권의 충돌이 야기된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 사태들은 수천 년 
동안 진행되어 왔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사이의 민족 분쟁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최근의 몇몇 사태들과 전쟁들은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적어도 몇 십년, 몇 백년 아니 그보다 몇 천년 동안 진행되어 온 
분쟁의 불씨가 여전히 
새로운 양상들로 그 모습만을 바꾸어 오고 있다는 사실
을 알 수 있다. 글로벌 시대와는 걸맞지 않게 동, 서의 문화 장벽은 쉽게 무
너지지 앉을 것 같다.

그런가하면 오랫동안 우리 시대를 지배했던 전통적인 가치관이 사라지고 신사
고 방식의 가치관이 이 시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 시대를 가리켜 
그 누구도 그 정체를 정의할 수 없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터넷 보급과 함께 
세계가 급변하고 있고 개인의 능력 위주의 부가 창출되는 시대도 열리고 있
다. 이것은 그 어느 때보다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가져올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유일의 남, 북 분단국으로서 여전
히 이데올로기의 고통을 안고 있으면서 격변하는 세계와 발맞추어 나가야 하
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거기에다가 제각각 이익 집단들의 목소리가 과거 어
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오랜 전통과 질서는 거추장스런 체제로 여기게 되
었고 간섭과 억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 교회의 형편은 어떤가? 요즘 들어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각종 이단, 사이
비들이 교회 혹은 건전한 선교단체 또는 
사회봉사 단체로 위장해 건전한 교회
들을 적극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몇 년 전 만해도 이단, 사이비로 규정되면 
큰 타격을 받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자기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곧장 사회 실
정법을 이용해 당사자들을 상대로 법정 소송을 걸어오고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이해와 갈등 속에 지구촌과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 은 점
점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한 예가 그 어느 
때보다 ‘자유’와 ‘평화’에 대한 부르짖음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란 외세나 타인으로부터 억압받지 않는 것을 부르짖는 것이고 ‘평
화’란 서로 다른 이익 집단 간에 힘의 균형과 동등한 지위를 함께 누리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를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
다. 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가리켜 평화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다.
초 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에 대
한 미국의 강력한 대응 역시 자신들의 자유와 평화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
고 명분을 달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지 않겠다는 것이 현재 세계 평화를 위협하면서가지 수행되고 있는 전
쟁의 성격인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 주변을 보아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노사간의 분
쟁 역시 서로의 이권을 추구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이면에는 자기들의 자유
와 평화를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 극단적인 투쟁도 불사하지 않는다. 요즘들
어 이단들이 강력하게 법적 대응을 마다하지 않는 것 역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를 외부의 간섭 없이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각각의 집단들을 통제할 기능성이 마비되고 말았다. 서
로 간에 간섭, 억압하거나 당하지 않고 각자 자기들이 하고 싶은 방식대로 
살아가게 놓아두는 것이 자유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평화라고 여기기 때
문이다. 그 결과 질서와 그 질서의 배경이 되고 있는 윤리와 도덕성은 더 이
상 고유 기능을 행사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자유와 평화는 방임과 무절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고 평화에는 절제와 균형이 따라야 한다. 때문에 자유와 평화는 
고도한 가치관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최상의 가치관을 
골고루 함께 소유하게 될 때 거기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평화가 자리잡을 
수 있다.

이 상태를 가리켜 성경은 ‘공평’과 ‘공의’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공평과 공
의를 유지하기 위한 주어진 제도가 율법이었다. 그 율법의 배후에는 절대선
이신 하나님이 존재하신다. 이것은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법안에
서만 공평과 공의가 발현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외에 다른 방법과 기준
으로는 이 세상에 자유와 평화가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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