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과 교회의 역할 

0
12

정치의 계절’과 교회의 역할 

김재성 교수(합신)

세계를 품고 나아가는 한국 교회이지만 한 국가 내에 존재하고 있는 한, 자
기 나라의 모든 일을 외면하고 살 수 없다. 그래서 교회는 정치, 경제, 교
육, 문화의 모든 일에 서로 긴장과 협조라는 파노라마를 연출하게 된다. 나
라 전체가 경제난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교회는 물질중심의 삶에 대해서 반
성과 자성을 촉구하며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함을 강조했다. 부패하고 썩
은 물을 정화하는 일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맡은 교회의 힘든 과제이다. 

요즈음 한국은 그야말로 정치의 계절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교계 지
도자들이나 교계 단체들이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행사를 
개최하고 있어서 문제 의식을 갖아야 하겠다. 

보수적인 교회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큰 원칙을 지키면서도 대체로 친 여
당의 성향이 짙은 쪽도 있었고 아예 정치에 초연하게 지내는 입장을 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편 진보적이며 사회 참여
적 신학 노선을 택하는 교회와 교
단들은 반정부, 반체제 발언을 과감하게 토해냈었다. 주요 시국사범과 구속자
들, 민주화 투쟁의 희생자들은 진보파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었다. 그래서 민
주화 희생자들의 자녀손들이 성공회 대학교에 특별 전형으로 입학하는 보상
을 시행하더라도 아무도 반발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갈채를 보내고 있다. 

정치를 가장 잘 한다는 영국에서도 목사들이 정치와의 적절한 관계 정립 때
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서 수난을 당하고 여러 가지 패턴을 만들어냈었다. 시
민들의 정치 의식이 왕권 통치를 수긍하고 있을 때에, 정부의 획일화된 국가
교회 체제를 거부하는 ‘단절교회'(Secession Church)가 강한 저항 정신으로 
고난을 당한 일이 그 한 예이다. 

여왕이 통치하는 성공회는 말할 것도 없고,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감독체제 
마저도 거부한 목사를 아버지로 둔 얼스킨 목사는 1697년 에딘버러 대학교를 
졸업하고 28년 동안 한 교회에서 성실하게 목회하던 중 이런 문제에 직면하기
도 하였다. 결국 교단에서 쫓겨나 소수 목사들과 함께 고난을 당해야 했다. 
무려 이 백 여 
년 동안 대립과 긴장 속에 있다가 1956년 스코틀랜드 장로교단
에 다시 가입하였다. 2002년에는 스코틀랜드 4개 장로교단들이 서서히 연합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실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하는 한국 교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지만, 교회
가 통일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기독교인들
이 정부의 주요 조직에 참여하게된 ‘문민의 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대에 교
회의 정치적 참여는 더욱 많았지만, 정부와 사회의 변혁에는 미치지 못했었
다. 청와대 예배에 설교하러 갔던 분들이 늘어났고, 해마다 대통령 조찬 기도
회에 모이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데도, 교회가 원하고 바라는 국가로 성화되기
에는 아직도 멀었다. 지난 해 ‘옷 로비사건’은 교회의 정치적 지도력을 땅에 
떨어트리는 일례에 불과하다. 

문제는 금년이다. 양대 선거를 치르게 될 올해는 매우 중요한 해이다. 그런
데, 기독교 단체들이 어떤 대선주자에게 몰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지연, 학연, 혈연을 뛰어넘는 목회자들의 건전한 정치 지도력이 발휘되어야 
할 때이다. 교회를 다분히 자신들의 득표 전략에 
넣고 철새처럼 움직이는 사
람들의 계산대로 따라갈 때는 아니다. 그런데도, ‘월드컵 축복성회’를 개최하
고 있는가 하면 ‘대선주자 모임’에 자주 목회자들이 모여서 축복기도를 해주
고,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식사초대 모임에 불려 다니는 것은 여전히 반복되
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형태의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더욱 더 많아지
고 바빠질 것은 뻔한 일이다. 

최근 미국 부시 대통령의 대북한 강경 노선에 대해서 어떤 기독교 단체는 극
렬하게 반박하는 결의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한국 정치인들 중에서도 보수적
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의 일부가 채택할 결의서를 교회가 먼저 들고 나온 
격이다. 기독교 신문에 등장하는 이러한 각종 모임들과 행사들은 모두 다 현
실 문제를 안고 동분서주하는 한국 교회의 자화상이다. 정신차려서 어느 모임
에 가야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결단해야만 ‘악의 병폐’를 고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