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현장에서_ 총회 사회부장 박성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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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현장에서 
총회 사회부장 박성호 목사

25일 새벽기도회 인도를 마치자마자 개인기도도 제대로 못하고 서둘러 떠
났다.

서울에 도착하니 햇볕이 쨍쨍 내려 쬐고 있었다. 부산을 출발할 때는 빗
방울 이 떨어져 우산을 가져 가야하나 하고 잠시 고민했는데 이렇게 날씨가 
다르다니 우리나라도 아주 좁은 땅은 아닌가 보다

기다리고 있던 박발영 목사(사회부 총무)와 정문영 장로(사회부 회계)를 
만나 함께 수해지역으로 출발했다. 

경기도를 지날 때 달리는 차창 밖을 주시해보니 강물이 황토색으로 변한 
것 외에는 평온해 보였다. 

강원도 홍천을 지날 때까지도 수마가 할 킨 흔적은 볼 수 없었고 오히려 평
화로운 시골 풍경만 눈에 들어 와서 지금 수해지구를 방문하러 가는 건지 농
어촌교회를 탐방하러 가는 건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도중에 식사를 하고 유원목 목사(가아교회)와 약속 
장소로 갔다. 20 여분 후 구릿빛 얼굴의 건장한 유 목사가 나
타났다. 

악수를 하는데 손에 압박붕대를 감고 있었다. 수해복구 작업에 참여하여 봉
사하다가 인대가 늘어났다고 한다. 붕대를 감은 손을 잡고 악수를 하는데 가
슴이 뭉클했다. 

자신의 교회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해복구현장에서 자신의 몸도 돌
보지 않고 인대가 늘어나도록 수고한 손을 붙잡은 내 손이 부끄러웠다
먼저 축대가 무너졌다는 가아교회로 갔다

다행히 예배당 건물에는 피해가 없었고 교회 대지 끝부분 도랑 옆이 깊숙이 
패여 있었다. 이 정도에서 비를 멈추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잠시 함께 기도한 후 차로 20∼30분 걸린다는 수해현장으로 출발했다. 

우선 수재민이 수용되어 있는 회관으로 갔다. 

집과 재산을 가족을 잃은 아픔을 달래며, 너무도 비좁은 공간과 재래식 화장
실등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수재민을 보니 눈시울이 불거졌다. 

그곳에는 군포제일교회 성민원에서 보낸 밥차가 있었고 마침 그 시간에 권태
진 목사가 와 있었다. 

유원목 목사와 협력하여 벌써 1주일 째 수재민과 복구작업을 하는 봉사대원
들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한번에 150명분의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모
든 도구가 준비된 밥차의 위력은 대단했다. 

가족과 재산을 잃고 망연자실하여 하늘만 쳐다보던 수재민들, 특히 취사도구
는 커녕 살 한 톨 가져오지 못했기에 밥을 해먹으려는 생각조차 못하는 분들
에게 따뜻한 식사는 정말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그곳에 계신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교회로부터 이렇게 큰 사랑과 은혜를 입었
다면서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권 목사와 향후의 계획을 의논한 우리는 약간 떨어진 수해현장으로 갔다. 도
로는 완전히 파손되었고. 다리는 끊겨 있었으며, 뿌리까지 뽑혀진 나무들이 
길을 가로막았고, 가옥들은 대파되어 있었다. 

수마가 할 킨 자국은 너무도 비참했다. 어느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빈
터만 남아있었다. 매스컴을 통해 본 수해 현장보다 더 참혹했다. 

강가에는 긴 꼬챙이를 든 사람들이 모래더미 속을 찌르며 다니고 있었다. 무
엇을 하는 거냐고 물으니 실종자의 시체를 찾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해현장에서 놀라운 사실하나를 깨달았다. 그것은 무분별한 개발
이 엄청난 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곳 주민들에 의하면 폭우로 범람한 강을 가리키면서 지금 흐르고 있는 
저 강줄기가 옛날 개발 전의 흐름과 똑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발된 곳마
다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산림을 무분별하게 깎고 굽은 강을 직각으로 변경하여 개발한 것이 자연의 
홍수조절 능력을 떨어뜨려 더 큰 피해를 입게 한 것이다. 이래서 자연재해인
데도 불구하고 인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를 위한 개발이 불가피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원리를 따라서 
개발해야하는 중요한 원리를 큰 수재의 댓가를 치루고 나서야 깨닫게 되니 
무척 마음이 아프다.

이번 수재현장을 통해서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첫째 재난에 신속히 대비할 수 있는 조직과 장비의 필요성이다.

현재의 우리 조직으로는 신속히 대처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신속하게 도울 
수 있는 시스템과 기독교봉사대가 많이 조직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며 또 밥차
와 같은 장비가 준비된다면 평소에는 복지시설을 위해 사용하고 비상시에는 
재난지역에서 사용한다면 추락한 기독교의 위상을 높이며, 사랑의 실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수해지역 교회의 교역자와 총회 그리고 총회산하 교회간의 긴밀한 교
통과 협력이 지역 복음화에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가아교회 유 목사와 군포제일교회 권 목사와의 신속한 연결과 총회사
회부를 통한 총회 소속 교회와 노회와의 긴급한 협력이 수재민에게는 큰 위
로와 힘이 되었고 수해지역교회에는 교회의 이미지 제고와 선교적 차원의 
큰 도움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당분간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도움이 필요함을 느꼈다. 지금
은 구호식품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면 지원이 시들해진다는 것이
다. 

지금 수재민의 정착을 위해 임시막사를 짓고 있다. 정착촌이 완성된 후에
도 그들이 다시 일어설 때까지 필요한 물품과 사랑을 계속 베풀어야할 것이
다.

우리는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구상하면서 수해지역을 떠났다. 막 출발하려
는데 군청의 공무원이 ‘목사님들 정말 수고하셨고 감사하다’면서 진심 어린 
인사와 비타민 음료수 1박스를 주셨다. 대접해야 할 우리가 공무원들에게 대
접을 받게 되니 기분이 묘해졌다.

하루 종일 차를 타서 그런지 몹시 피로한 하루였지만 수재민들의 모습을 생
각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귀가 길에 올랐다. 

부산에 도착하여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시계를 보니 다음날 새벽으로 날
짜가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