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체적 부활신앙과 개인과 교회의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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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체적 부활신앙과 개인과 교회의 부흥

 

고대하던 부활절이 눈앞에 다가왔다. 부활절은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새롭게 만나는 날이다. 2천 년 전 부활하신 주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기에 성도가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삶은 날마다 새로운 부활의 경험이다. 따라서 우리는 부활절을 단순한 기념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새롭게 하는 부흥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주님의 부활은 ‘구원받는 신앙’의 불가결의 요소로 기독교 진리의 기반이다. 따라서 부활신앙은 개인의 종교적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니다. 그렇기에 성경적 부활의 진리가 빠진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나아가서 부활신앙에 내포된 역사적 사실로서의 부활과 구속적 의미로서의 부활도 필수적이다. 총체적 부활신앙은 어느 한 쪽만 취하지 않는다.

주님의 역사적, 문자적 부활은 성경에 기록된, 빈 무덤, 주님의 현현, 초대교회의 출범에 대한 최상의 설명이자, 사실상 유일하게 타당한 설명이다. 제자들의 극적변화와 놀라운 선교활동도 마찬가지이다. 바울은 그리스 로마 세계의 조롱거리인 부활의 메시지를 철학적으로 설득하려 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로 선포하였다. 주님의 부활은 성경에 차고 넘치는 증거들로 인해 역사적 개연성을 뛰어넘는 시공간적 사건으로 확증된다.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는 구속적 의미가 뒤따른다. 주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죽으셔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그의 나라를 세우신 사실을 입증한다. 주님의 부활이 없다면 죽음에 대한 승리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영생도 없을 것이다. 주님의 부활은 그의 주장이 모두 참이라는 것, 그의 약속이 모두 성취되리라는 것을 보증한다. 사도들이 고백하는 대로 부활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창세부터 시작된 역사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구원 역사의 정점이다. 이렇게 총체적 부활신앙은 부활의 사실과 의미를 아우른다.

주님의 부활은 신적 능력의 역사이다. 이 능력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이 사실은 죄에 대한 개인적인 용서와 승리 너머를 가리킨다. 계시록은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죄와 사망의 정복자임을 보여준다. 주님의 부활은 그의 죽음이 노출시킨 죄악과 그 결과인 죽음을 단번에 영원히 패퇴시키셨다. 만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부활의 능력을 배제한다면 그의 삶은 즉시 힘을 잃고 한갓 윤리도덕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총체적인 부활신앙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율법적 노력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로 복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총체적 부활신앙은 부흥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어떤 예수든 믿으면 신자, 속죄의 죽음을 믿으면 좋은 신자, 주님의 부활을 믿으면 더 좋은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부활신앙이 없다면 참 신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신앙을 결여한 교회는 예수의 생명력이 배제됨으로 친목단체나 사회단체, 혹은 종교집단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총체적 부활신앙을 견고하게 붙잡는 교회는 신앙의 회복과 부흥을 경험할 것이다.

부활의 사실은 변치 않지만, 부활신앙은 성장하고 새로워진다. 제자들의 변화는 부활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목격자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마냥 움츠린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담대한 전도자로 변화되고, 조롱과 핍박을 무릅쓰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엠마오의 두 제자와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되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이 각자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목회적’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이러한 주님의 사역은 부활신앙에 대한 목회적 접근을 요청한다. 신앙의 부침은 누구에게나 있다. 신앙적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곧바로 신앙의 쇠퇴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앙의 성장은 신앙의 시련을 겪음으로 확신에 이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목회적 가르침은 개인의 신앙 여정에서 부활신앙을 새롭게 할 것이다. 이는 다시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따라서 목회적 돌봄으로 부활신앙을 새롭게 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참된 부흥을 이루는 총체적 부활신앙을 확립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