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회 총회 개회예배설교 윤석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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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4:6-12 자유와 굴레 

2004년 9월 21일 천성교회 제89회 총회 개회예배설교 윤석희목사

먼저 제89회 총회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기원하며, 참석하신 모
든 총대님 가정과 교회와 사역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넘치기를 바랍니
다. 
하나님의 계명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1-4계명과 5-10계명은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지만 말씀하신 분이 ‘한 분, 한 하나님’이십니다. “우상
을 만들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말씀하신 분이 “도
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게 거치면 모두 범한 자
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
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약2:10-11)
고 율법의 연관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바울은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
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그리스도인의 자유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유자입니다. 그리스도만을 왕으로 섬기는 자유자로 아무
도 우리의 왕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동시에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따라 가는 하는 ‘굴레, 멍에’
가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
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딤전4:4-5)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이 선합니다. 하나님께
서 조성하신 어떤 사물도 그 자체로 악하지는 않습니다. 기도함으로 받아 선
하게 사용해야 되는 굴레, 멍에가 사람에게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지음받은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
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하나
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
양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
을 따라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것을 신학적으로 
‘왕적인 권세’라고 합니다.
사람은 피조물에게 지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만물을 지배하고 다시리는 
권세를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영적인 존재가 자연계, 물질계를 통
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파괴가 아니라 건설적인 통치여야 합니
다.

그래서 성경은 종종 ‘자기 부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도 그냥 버려
두면 악을 따라 갑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
로 마치는 경우가 있고, 자유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그리스도인들을 방종하
게 만들며, 심지어는 주님보다는 자신을 섬기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 사치와 방탕으로 흘러갈 수 있고, 남자들은 자유하
기 위하여 ‘재물에 노예’가 되기도 하며, 여성들은 ‘허영심’에 들떠 살
기도 하고, 청년들은 운동 경기와 전자오락에 시간을 바쳐 버리는 세상이 되
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게 되고, 하나님
을 멀리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들은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
유하기 때문에 이기적이거나 하나님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미 자유가 아닙
니다. 그러면 참다운 자유가 무엇일까요? 

2.그리스도인은 굴레가 있습니다.
“자유”는 자기가 마음대로 다 할수 있는 허가증이 아닙니다. 선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부도덕이요 타락이며 방종입니다. 자유는 테두리가 있
고, 울타리가 있습니다. 반대로 자유를 잘못 오해하면 율법주의로 떨어지기
도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로마 교회를 향하여 서신을 냈습니다. 특히 로마서 
14장 1절부터 15장7절과 고린도전서 8장-10장까지 내용을 살펴보면 자유과 
자기 부정에 대하여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와 굴레를 조화있게 생각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
입니다. 사람들은 내적인 것보다 외적인 상태를 중요시 합니다. 또 다른 사
람에게 대해서는 냉혹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이것은 극히 위
험한 일입니다. 

로마교회 안에는 채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분들은 육식, 고
기를 좋아하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상대방을 서로 비방하고 비판했습
니다. 여기에 인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관용
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문제는 쉽게 해
답을 얻게 됩니다. 
외적인 행동보다는 내적인 동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겉으
로만 이해한다면 채식을 좋아하는 분들은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정욕
적이고 육체를 위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고, 반대로 육식을 좋아하는 사
람들은 채식주의자들에게 금욕주의 사람이요 골라서 먹는 편식주의자라고 말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육식을 좋아 하는 자도 주님을 위하여 먹고, 채식
을 좋아 하는 자도 주님을 위하여 먹는다면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가 자신을 부인하라’는 명령을 받았지, ‘형제를 부인하거나 
비판하라’는 부름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교회생활을 할 때 다른 사
람에게 더 많은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자기의 속사람을 저울질 해 보시
기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교인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자신
을 위하여 사는 이가 없다”고 합니다. 모두 다 “주를 위한 것”이라고 했
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자유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자신을 즐겁게하는 쾌락이 아닙
니다. 자신보다는 주님을 마음껏 섬기는 자유를 자유라고 말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
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지금 상대편이 하는 행동이나 삶이 주님을 위한 것인가? 자기를 위한 것인
지? 이것이 자유를 평가하는 기준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있다
면 어떤 일을 하여도 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하여 하는 행동이
라면 어떤 것도 선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포기했던 분입니다. 결혼도, 때로는 생
활비도 포기했습니다. 고기같은 음식이나 포도주도 포기했습니다. 날까지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포기하란 말보다 그리스도
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버릴 것은 버릴 때 참된 자
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16절에 우리가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
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유익
보다 하나님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는 것이 자유의 최
우선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5장 1-3절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
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
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이라면, 주의 종이라면 우리들을 부
르신 주님을 닮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디까지 닮을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는 자기를 기쁘게 하시지 않으신 것까지 닮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3.강한 자와 약한 자
교회 안에는 말씀을 잘 지키는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섞여 있습니
다. 순종을 잘 하는 ‘강한 자’와 순종을 하고 싶지만 어려워하고 힘들어 
하는 ‘약한 자’가 공존합니다. 고기나 포도주나 날짜에 관계없는 자와 관
계가 있는 자가 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자와 목사가 무슨 말
만하면 양심에 가책을 받는 사람들도 섞여 있습니다. 강한 자는 연약한 양심
의 소유자들 앞에서 조심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부딪히거
나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화평한 일과 서로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14:19), 15장 2절에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
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고린도전서 10장 23절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
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
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최소한 두 가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냐? 또다른 하나는 다른 성도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냐?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냐? 다 유익하다면, 그런 일이라면 마음대로 행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마음대로 많이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주님
이 싫어하시는 것이고, 교회에 유익이 없는 행동이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닙
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유
익을 위하여 굴레를 씌웠습니다. 이번 총회가 하나님께 영광이요, 총회에 유
익된 것들을 결정하는 총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