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촛불 _ 박부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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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편지

 

촛 불

 

 

어두운 골방에서 모처럼 촛불을 켠다.

모든 빛이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촛불 빛은 유독 애틋하다. 겨울 밤 마음 시린 사람들의 푸른 냉기 서린 얼굴을 적시는 불빛. 작은 촛불은 왜 이토록 우리를 숙연하게 하는가.

촛불은 예수님의 형상. 제 몸을 끝까지 태워 세상을 밝히는 희생의 상징이다. 추위에 저린 인생들의 아픔을 녹이는 저 사랑의 몸부림. 뚝뚝 떨어져 온몸을 타고 내려 쌓이는 촛농의 언덕에 골고다 길의 채찍 소리가 엉긴다.

칠흑을 뚫고 그 작은 주홍의 생명이 개화하여 서서히 빛 물결의 향기가 번져 오면 칼바람 눈발 속에서 꿋꿋이 피어나는 설중매나 순결한 에델바이스의 얼굴이 보인다. 때론 바람 앞의 연약한 운명에 빗대지만 촛불의 내면은 외유내강의 올곧은 줏대. 부드러우나 약하지 않고 흔들리나 넘어지진 않는다. 그 어떤 큰 자도 그 앞에서는 고개 숙여 다만 탄식의 한숨을 내쉬며 작아질 뿐이다. 자신을 바쳐 마침내 온 천지를 생명으로 가득 채우고야마는 이 아름다운 헌신의 핏빛 눈물.

촛불은 참 제자의 형상. 떠들썩한 자기 자랑, 요란한 권세의 몸짓이 없다. 자존(自存)을 애써 과시하지 않는다. 욕망에서 발화된 시기, 다툼, 불평의 잡음도 일체 없다. 오롯이 제 자리를 지키는 촛불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생을 묵묵히 살아간다. 횃불이 높이 치켜드는 것이라면 촛불은 소박하게 켜 두는 것. 횃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라면 촛불은 사르르 타들어 가는 것. 횃불은 선동적인 혁명의 기치. 촛불은 정중동(靜中動)의 작은 일상의 감동.

숱한 개혁자들은 조용하나 빛나는 삶을 살았다. 에이든 토저는 ‘순간은 시끄럽고 영원은 고요하다’ 했다. 모든 화려함과 영적 소음들을 뒤로 한 채 촛불은 위를 향하며 아래로 타들어 간다. 영원을 바라며 지상의 제 몫을 감당할 뿐이다.

겨울이 깊다. 창문마다 밤이 깊다. 촛불의 시간이다.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