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땅에 단비를| 요르단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까지_ 김수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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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알라 교회당 전경

 

마른 땅에 단비를

요르단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까지

<김수오 선교사_총회 파송 | 합신 25회>

* 이스라엘에서 사역하는 김수오, 성복희 선교사 부부가 잠시 입국하였다. 이에 그들의 사역의 과정들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1. 선교 훈련 과정과 목적지 정착까지의 과정은?

  MVP선교회(SVM), 중동선교회와 UPMA를 통해 인도네시아에서 1개월 리서치 활동을 했고 김요한 선교사 중심의 내부자운동(무슬림 가족 내에서 암암리에 전도하는 운동)에 관련하여 훈련을 받았다. 원래 파키스탄 선교 비전을 품고 출발하였으나 총회세계선교회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그리고 이라크 세 나라 중에서 선택하여 나갈 것을 권유하여 이라크로 나가기로 하고 2005년 12월 21일 송파제일교회에서 주파송선교사로 세움을 받고 총회 파송 선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한국 정부에서 그 나라 입국을 불허하여 요르단으로 방향을 틀었서 2006년 1월에 요르단에 입국하였다. 그런데 이라크의 치안 불안과 정치적 보복 때문에 요르단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이 100만 명(비공식 120만 명)에 이르렀고 우리는 암만에 거주하며 이들 피난민 선교에 힘을 쏟았다.

 

  1. 피난민 촌에서의 사역은 어떤 방식이었나?

  우리 부부의 특기가 미용이다. 이 기술로 섬기며 언어를 습득하였고 요르단 내의 한국 선교사 그룹이나 현지 교회의 요청이 있으면 달려가서 섬기곤 했다. 2007년 후반기부터는 이라크 난민 돌봄 사역을 중심으로 일하였는데 2010년에 그 난민들이 이라크 전쟁 참전국인 미국과 유럽으로 난민 신청하여 이전해 가는 바람에 그 수가 많이 줄었다.

  그 대신 2012년 6월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시리아 현지의 선교사들이 요르단으로 피신해 왔고 같은 해 10월부터 들어온 시리아 난민들은 요르단-시리아 국경 10km 지점인 자타리 난민촌에 정착한 수가 15만 명에 달했다. 상하수도도 거의 없고 밀집되고 열악한 난민촌에는 비극이 끊이질 않았다. 2013년 1월에는 큰 눈이 내려 난민촌 천막이 붕괴돼 24명의 아동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학교도 없어 그저 놀기만 하는 난민촌의 어린이들을 위해 태권도 사역을 하였고 2015년 5월까지 요르단 사역을 마감하였다.

 

  1. 이스라엘로 옮긴 과정은?

  요르단에서는 수단 출신 사역자가 섬기는 이띠하드 교회에서 멕시코, 브라질, 인도 등의 다국적 동역자들과 협력 사역을 하였다. 동역자들과 함께 국경근처 마을 마프락 지역을 방문하여 시리아 난민들과 예배하고 복음전도하였으며, 어린이 성경공부를 지도하였다. 2015년 5월에 1기 사역을 마치고, 본부 총무에게 보고하고 2015년 1월에 답사한뒤 본국에서 지역 재배치의 절차를 마치고 2015년 8월 이스라엘로 들어갔다. 이스라엘의 물가가 요르단의 2배 정도 되고 비자를 받기가 너무 힘든 지역인데 이스라엘로 사역지를 옮길 때 대림교회에서 파송선교사로 재정의 부담을 덜어주셔서 이스라엘로 가는 것이 가능했다.

  인구 3만 명이 조금 안 되는 팔레스틴의 수도 람알라에서 람알라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사실 요르단에 있을 때는 람알라에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팔레스타인의 수도이자 아랍 사람들의 본거지 같은 곳이고 장벽도 있다. 보통 베들레헴 같은 곳에는 한국인 여행객도 들어가는데 람알라는 힘든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스라엘로 들어간 바로 그 주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람알라에서 사역하는 목사님을 만나서 람알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 주간부터 협력사역을 하기로 하였다. 람알라 교회는 1951년 미국의 신시아 선교사가 아랍 남성과 결혼하여 가정에서 교회를 시작하였다. 이후 30년간 섬기고 1970년 후반까지도 왕성하게 사역하다 알츠하이머로 사임하셨다. 남편은 장로로 섬기다 2014년도에 교회당을 성공회에 매각하고 미국으로 갔다.

  2013년부터 미국 시민권자 한인 목사가 오셔서 함께 교회 사역을 협력하였다. 기존의 람알라 현지 교인들을 교육 훈련하고 있다. 현재 20-25명의 성도들이 모인다. 최근엔 성도들이 예배의 중요성과 함께 예배 후의 친교활동도 적극적이며 자기들이 자발적으로 음식도 준비해 오고 교제에 힘쓰는 한국적인 교회 문화도 정착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4월에는 임직식을 갖고 장로 3명 집사 7명을 세워 서서히 자립하는 교회를 지향하고 있어 감사하다. 방학 때면 고든 코넬 교수님이 오셔서 신학을 지도하고 계서서 곧 목회자도 배출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1. 가족 관계와 기도의 제목들 그리고 향후 목표는?

  자녀는 1남 2녀이다. 모두 생각보다 현지에 잘 적응하였다. 그러나 막내 딸 수현이가 요르단에서 중고침대를 사용한 후에 심한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다. 51도 측만이어서 그 정도가 심하여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인데 여러모로 난점이 많다. 기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비자를 1년 1회 발급받아야 한다. 공부하는 신분으로 해야 하니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정식 학생은 보통 1년 14,000불 정도의 학비가 필요하다.

  또 거주하고 있는 람알라 지역이 해발 900m 정도의 위치인데 겨울엔 습하고 춥다. 이로 인해 겨울만 되면 발생하는 대상포진 증세로 고생 중이다. 교회당 건물이 매각된 뒤로 교회 건물을 산 성공회 측에서 2016년에는 건물을 비워 달라고 했다. 현재는 직업학교 채플실에서 예배를 하고 있는데 안정적인 예배 장소가 절실히 필요하다. 사역자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이겠지만 우리도 실질적인 자립이 목표이다.

 

  1. 그밖에 당부의 말은?

  최근까지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는 교회가 설 수 없고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람알라에서도 그렇듯이 성도들이 자유롭게 모이며 예배드린다. 심지어 텔아비브에서는 도로변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며 전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 중심에서 찬양 예배를 한다. 성경 지리 답사를 계획하거나 요르단 인근의 중동과 이스라엘 선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누구든지 와서 잠시라도 체험하기를 권한다.